지하철 9호선은 공항철도와 비슷한 느낌이다. 아니, 최근에 생긴 지하철은 대체로 서로 닮아 있다. 더욱 깊숙이 지하로 내려가야 하고 환승 게이트를 무조건적으로 거쳐야 한다. 1에서 8까지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요금이 부과되지 않는다고 안심시킨다. 그럼 이 장애물들은 왜? 언젠가는 야금야금 가져가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초반에 잦은 투덜거림도 어느새 사라지고, 아무 생각 없이 툭 카드를 던져 게이트를 통과하고 만다.

공항철도. 아슬아슬하고 아름다운 이름이다. 태어난 순서대로의 숫자도, 분당선처럼 한 방향 목적지도 아닌 이름이다. 비행기와 열차가 만나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 그리고 그 지점에서 서로가 다른 갈 길을 간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알랭 드 보통처럼 ‘공항에서 일주일을’ 보내게 된다면 나는 그곳에서 헤어지는 이들을 오래토록 바라보고 싶다.

2009년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쓴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A Week at The Airport]」에서는 아코르 계열 호텔이 등장한다. 그가 일주일간 머문 소피텔, 그리고 잠시 스치듯 지나는 노보텔. ‘……노보텔에 들어가면 그들에게 어떤 흥미로운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를지, 심야에 얼마나 부적절한 영화를 볼지……’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에 가기 위해 나는 9호선을 타고 신논현역으로 향했다. 공항과는 점점 멀어졌다.

프런트에 서서 예약자의 성함을 말한다. 프런트 직원이 이름을 확인하고 객실키를 발급해주지 않았다. ‘프리미어 스위트입니다. 프리미어 라운지에서 체크인 하십시오.’ 이코노미에서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된 기분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6층에 다다르자 프리미어 라운지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가을 리노베이션을 완료한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의 프리미어 이그제큐티브 룸 및 프리미어 라운지는 '혁신과 편안함의 균형'을 이룬 새로운 객실을 제안한다-고 한다. 확실히 복도에 이어진 카페트와 프리미어 라운지의 대리석 바닥이 산뜻한 느낌을 준다. 프리미어 라운지에서의 체크인은 입국심사 같은 느낌이다. 물론, 그 만큼 딱딱하지는 않지만. 두 개의 객실키를 받고 이런저런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객실로 향했다.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이 지향하는 바는 ‘휴식과 재충전’이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다. 재충전이라는 어휘가 이상하다. 충전(Charge)에 다시(Re-)를 붙였다. 우리말로 충전은 ‘휴식을 하면서 활력을 되찾거나 실력을 기르는 일’을 뜻하는데, 재충전도 같은 의미다. 아마도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이 말 하는 건 ‘Refresh’의 뜻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머물 프리미어 스위트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충실히 따랐다고 볼 수 있었다. 객실은 넓은 공간감과 투숙객의 자유로운 동선 및 공간 활용을 위해 공간 분리벽을 최소화한 오픈형으로 설계 됐다. 인상 깊은 건 욕실이었는데 투명유리 파티션을 사용하여 객실 내 다른 공간과 분리하면서도 밝고 넓은 느낌을 냈다. 객실 톤 자체가 무채색에 밝은 편이라 그다지 야해 보이지 않았다. 전자동 블라인드 시스템으로 프라이버시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변경 가능하다. 객실 내 터치스크린 멀티 시스템으로 가벼운 터치만으로도 실내의 조명과 온도 등을 컨트롤 할 수 있으며 블루투스 스피커, 무료 Wifi 등 비즈니스 고객을 위한 다양한 편리함도 경험할 수 있다. - 라고 쓰고 있는 객실의 책상도 원목 위에 투명 유리로 되어 있다. 커튼을 모두 열어둔 채 해가 지는 걸 바라본다. 원고를 이 정도에서 저장해두고 슬슬 밖으로 나가 강남을 배회했다. 알랭 드 보통도 한 밤에 활주로를 경험하고 잠을 이루지 못해 심야 바를 찾았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젊은 여성을 만났는데, 그녀는 고급 콜걸이었다.

활주로를 노닐 듯 휘청거리며 강남을 뛰어 다녔다. 승차거부를 피하기 위해 늘 초조히 시계를 보던 날들을 잊었다. 술을 마시고 자리를 옮기고, 술을 마시다가 자리를 옮겼다. 알랭 드 보통 같은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자정이 훌쩍 넘어서야 호텔에 들어섰다. 늘 소란했던 호텔 로비가 조용하다. 에펠탑도 어두운 조명 속에 졸고 있는 모습이었다. 객실에 올라가 심사숙고한 뒤 체크해 둔 조식 룸서비스 메모를 얼른 문고리에 걸어뒀다. 기내식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구름에 떠 있는 듯 숙면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