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클루니가 결혼했다. 의외다. 나는 그가 평생 독신으로 살 줄 알았는데…….

그의 결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조지 클루니는 28살이던 1989년, 탤리어 밸섬과 결혼해 1993년 이혼했다. 4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고, 이 당시 클루니는 단역을 전전하던 무명배우였다. 이혼 후 TV 시리즈 「ER」에 출연하며 스타덤에 올라선 후로, 클루니는 숱한 여성들과 염문을 뿌렸다. 스캔들과 루머의 천국인 할리우드에서도 그의 여성편력은 독보적이다. 워렌 비티 이후 최고의 플레이보이. 그는 성공한 독신남이 누리는 화려한 싱글 라이프의 대표 아이콘이었다. 이런 그의 이미지는 제이슨 라이트맨 감독의 영화 「업 인 디 에어」(2009)에도 녹아 있다.

여행에서 가장 흥분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비행기가 낯선 도시에 착륙하기 직전, 공중에서 목적지의 전체 모습을 내려다볼 때가 아닐까? 「업 인 디 에어」에는 미국의 여러 대도시를 하늘에서 조망하는 장면이 곳곳에 있다. 이 장면들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가치가 있다.

시인 김경주는 그의 책 「PASSPORT」에서 ‘각각의 도시마다 고유한 공기가 있다. 낯선 도시에 도착해 그 도시의 공기를 호흡하고 기억하는 것. 그게 여행의 기쁨이다.’라고 썼다. 비일상(非日常)의 시공간에 자신을 던져놓는 행위. 그것이 여행이다. 그리고 「업 인 디 에어」의 주인공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이러한 비일상을 일상으로 삼는다. 그는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비행기’라고 답하고, 1년 365일 중 320일 이상을 호텔에서 잠드는 독신남이다. 그의 직업은 해고 전문가다. “당신 오늘부로 해고야.”라는 껄끄러운 말을 대신해주기 위해 그는 미국 전역을 날아다닌다. 미국처럼 사회 안전망 제도가 거의 없는 나라에서, 해고 통지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그의 직업은 타인의 삶을 하루아침에 무너트리는 일이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대가로 그는, 자신이 자유라고 믿는 캐주얼한 삶을 얻는다.

영국의 천재 시인이자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는 6개월 동안 미국 전역을 여행한 뒤,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게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호텔 룸서비스가 제일 좋더군요. 마치 천국(paradise) 같아.” 그렇다. 항공사와 호텔의 서비스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당신은 그저 아멕스 카드와 여권만 챙기면 된다. 아, 회원카드나 제휴카드가 있으면 더 좋고. 라이언 빙햄은 가벼움의 효율성이 중독된 자다. 기내에 들고 탈 수 있는 작은 캐리어에 효율적으로 짐을 싸고, 티켓팅과 검색대를 10분 내에 효율적으로 통과하는 방법을 알고, 각 공항의 터미널까지 최단거리로 주파하는 길을 속속들이 안다. 오늘은 디트로이트, 내일은 마이애미. 자동차가 필요하면 렌트를 하고, 숙소가 필요하면 호텔을 예약한다.(이 영화에는 힐튼 호텔의 간접 광고가 매우 자연스럽게 들어 있다. 미국 전역의 힐튼 호텔 체인의 명소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일과를 마치고 회사에서 경비로 지급되는 40달러 이상의 고급스런 호텔 다이닝을 마친 후, 스카이라운지나 디럭스 바에서 위스키를 홀짝이다가, 거기서 만난 이성과 이야기가 잘 통하면 호텔방으로 데려와 섹스를 나눈다. 캐주얼한 삶. 캐주얼한 관계. 캐주얼한 섹스. 이렇게 살기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건 뭘까?

라이언 빙햄의 별명은 ‘빈 배낭氏(Mr. empty backpack)’이다. 그는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에 아무 것도 넣지 않는다. 집도 없고 차도 없다. 그러니 은행 대출도 없다. 필요한 건 호텔과 항공사의 서비스를 통해 ‘빌리면’ 된다. 무소유. 그게 자유를 보장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관계의 친밀함. 그걸 버려야 한다. 부모, 형제, 친구, 애인, 아내, 자식. 이 모든 친밀함이 당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된다. 집(house)이 없다는 건 가정(home)이 없다는 것이고, 나아가 가족(family)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당신은 가볍게, 캐주얼하게 살아 갈 수 있다. 우리는 일부일처제에 갇힌 백조들이 아니다. 우리는 대양을 헤엄치는 한 마리 외로운 상어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surrounded) 있으면서도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isolated) 있는 삶. ‘공중에 떠 있는(up in the air)’ 가벼움. 영화 「업 인디 에어」는 어른을 위한 「피터 팬」 동화다. 피터 팬은 팅커벨의 마법가루 힘으로 공중을 난다. 라이언 빙햄은 아메리칸 에어라인과 힐튼 호텔의 힘으로 공중을 난다. 그리고 이 자유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용기’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는 말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보니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어른이 될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죽을 때까지 피터 팬으로 살기를 바랄 수도 있다. 필자 역시 5년 전까지만 해도 평생 어른이 되지 않겠다는 각오로 살았다. 그것은 결국 개인의 선택의 문제다. 가족, 특히 자식은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친밀함을 주지만, 그 친밀함이 당신을 옭아매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를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하나를 버려야한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자신의 가정을 꾸리길 원한다면, 이전에 당신이 누렸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게 포기가 안 되면, 독신으로 살면 그만이다.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가는 오로지 본인이 결정할 문제다. 그러므로 이 땅의 독신주의자들이여,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라. 당신이 외로움을 지불하고 얻는 자유를 감당할 수 있다면 굳이 어른이 되려하지 마라. 세상의 시선에 등 떠밀려 당신이 선택하지 않은 책무를 짊어지면, 당신의 삶은 불행해진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명절날 남의 집 자식 혼사 문제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전통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나이가 찼는데도 독신을 고집하며 살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니 그 이전에, 인간관계의 친밀함을 포기하고 외롭고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아침에 잠에서 깨자 낯선 호텔방에 당신 혼자라면? 심지어 비좁고 불편한 비행기 이코노미석이라면? 그렇게 매일매일 평생을 살아가야한다면 겁이 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가볍고 자유로운 삶의 방식에 끌린다면, 지금 당장 여행 가방에 세면도구와 속옷만 챙겨서 나서라. 나머지는 호텔과 항공사의 서비스가 책임질 것이다.
_배호남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