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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elReal] 상생 3.0
전경우  |  eee0e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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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2  0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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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7 홍대 로비

상생은 원래 음양오행에서 나온 말이다.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의 오행(五行)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을 사자성어로는 상생지리(相生之理)라 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감’을 상생이라고 설명한다.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고루 갖춘 사람만이 그 조화로움으로 이 세상에 상생의 덕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 상편 제 2장을 보면 ‘유무상생(有無相生)’이란 구절이 나온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 함께 어우러져 사는 모습을 논한 노자사상의 하나다.

동양의 철학인 상생은 서구 생태학에서 파생된 개념인 공존(co-existence)이나 공생(symbiosis)보다 더욱 포괄적이고 발전적인 개념이다.

 

‘상생’이라는 단어가 너무 흔해진 시대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상생을 외치니 정작 본 뜻은 어디로 사라지고 공허한 글자만 남았다.

사람들은 ‘맛집’을 믿지 않듯 ‘상생’에도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다. 연말마다 틀에 박힌 상생을 외치던 호텔업계는 상생 코드(?)를 중시하는 정권이 들어선 이후 새해 첫날부터 상생, 아니 생색내기에 바쁘다.

기업이 외치는 ‘상생’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는 금전이나 현물의 기부 행위다. 재원을 마련해 사회복지단체 등에 기부를 하며 사진을 찍고 언론에 내보낸다. 그리고 그 이후 어떻게 실제로 어려운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는지는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여기서 더 발전된 2단계는 컨설팅이나 재능 기부 형태다. 직접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 요리를 해주거나 집을 고쳐준다. 제주 신라호텔이 최근 진행했던 ‘맛있는 제주만들기’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호텔이 보유한 조리 기술과 서비스 노하우를 컨설팅 해주는 형태로 진행이 되는데 이부진 사장이 직접 현장을 찾을 정도로 공을 많이 들였고 반응도 높았다.

1단계와 2단계를 아우르는 형태도 보인다. 최근 제주신화월드가 내세운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신화월드를 운영하는 람정제주개발은 제주지역 사상 최대의 일자리지원센터 설립과 제주도발전기금 100억원 출연 등 5대 지역사회 상생 분야에 올해 말까지 약 9700억원을 기부, 후원할 예정이라 밝혔다. 제주신화월드가 밝힌 5대 상생 분야는 지역경제 활성화, 도민 일자리지원센터 설립, 기부 및 후원, 지역사회와의 상생, 제주도 환경보호다.

도민 일자리지원센터에는 청년은 물론 해외취업, 경력단절여성 취업,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은퇴자 재취업, 장애인 취업,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 지원 등 7개 분야 세부 운영계획이 포함됐다. 연간 운영예산은 약 141억원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큰 마음을 먹고 거금을 지원한다고 발표 했지만 이런 형태의 ‘상생’ 프로젝트는 자칫 잘못하면 역효과를 불러온다. 가장 큰 부작용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가 중장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에 기대는 행태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상권활성화, 고용, 환경문제 등 중장기적인 플랜을 세워야 하는 이슈에 기업이 개입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길게 봤을 때 지양해야 하는 행위다. 람정제주개발이 제주신화월드에 투자하는 금액은 총 2조원 내외로 알려져 있는데 그 절반을 사회공헌에 쓴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며 주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람정제주개발은 사회봉사단체도 아니고 사회적 기업도 아니다.

스스로 재원을 마련하고 인원을 확충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기업에 기대다 보면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자생력은 점차 약해지게 된다. 그러다 그 기업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 도시 전체가 큰 타격을 받고 휘청거리게 된다. 서로 흥하는 ‘상생’이 아닌, 서로 극해 살을 깎아먹는 ‘상극’이 된 셈이다.

지자체가 기업에 손을 벌려야 하는 것은 천재지변 등 단기적인 이슈로 선을 긋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감한 카지노 관련 사안 등을 지역사회와 협의해야 하는 제주신화월드 같은 회사가 ‘퍼주기’를 계속하다 보면 결국은 ‘대가성’ 논란 등 잡음이 따르기 마련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상적인 활동을 펼치는 기업에 ‘빨대’를 꽂는 행위는 중단돼야 마땅하다.

 

최근 호텔업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상생’ 모델은 롯데의 L7홍대다. 롯데시티호텔이 ‘효율’을 내세운다면 L7은 ‘라이프스타일 호텔’을 지향한다. L7은 3번째 업장 위치로 홍대입구 사거리 옛 청기와 주유소 자리를 낙점했다. 예술, 출판, 디자인, 인디문화 등 온갖 것들이 어우러지는 홍대 특유의 분위기를 끌어들여 뉴욕의 에이스호텔처럼 독특한 호텔을 만들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틀이었다. 그런데 ‘범홍대권’인 홍대와 서교동, 합정동, 연남동, 망원동 일대는 현대 도시의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지역이라는 리스크를 갖고 있었다. 롯데는 예전 이 동네 터줏대감이던 모 제과점에 자사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을 입점시키는 과정에서 잡음을 낸 ‘원죄’도 있어 자칫하면 젠트리피케이션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롯데는 L7홍대를 대기업 스타일로 무작정 밀어붙이지 않았다. ‘상생’ 이슈를 의식해 지역 사회에 돈을 퍼주는 1차원적인 방법 대신 더 어렵고 지난한 길을 택했다.

실무자들이 직접 지역에 위치한 출판사를 찾아가고 인디밴드들이 공연을 하는 장소에 얼굴을 내비치며 조금씩 관계를 쌓아갔다. 롯데의 실무자가 수 없이 홍대 골목을 헤집고 다니는 동안 지역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졌고 그 결과물은 새로 오픈한 호텔에 대폭 반영됐다.

   
▲ L7 홍대 로비

홍대 문화의 특징은 개별성과 독립성이다. 이른바 ‘메인 프레임’이라는 것이 강남에는 존재하지만 홍대에서는 맥을 못춘다. 이런 독특한 지역색을 호텔에 입힌다는 것은 대기업 입장에서는 난감한 부분이다. 결국 롯데는 ‘상생’의 기본적인 뜻을 깨닫게 된다.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감’이라는 단어의 뜻에서 ‘서로’를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롯데는 재벌기업이 돈으로 뮤지션을 고용하고 출판사에 일을 맡기는 형태를 넘어서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지역의 문화적인 ‘맹주’들에게 도움을 받기 시작한다. L7홍대에 있는 서재는 비싸고 좋은 책을 ‘전시’해 놓은 일반적인 호텔의 모습과 크게 다르다. 지역 출판사와 ‘함께’ 진행하는 활동이다. 로비에 마련된 음악 감상 공간의 LP컬렉션과 마주한 어떤 이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왜 다 여기에 있지”라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해변가요제’부터 ‘레드 제플린’까지 아우른 ‘광폭’ 컬렉션은 성기완, 한경록, 차승우, 곰사장, 새소년 등 홍대 주요 뮤지션들이 직접 고른 주옥같은 명반들이다. 롯데 담당자는 홍대의 터줏대감들이 써내려간 리스트를 들고 황학동 중고 음반가게를 이 잡듯 뒤져 컬렉션을 현실로 만들어 냈다.

핸드픽트호텔 같은 지역 밀착형 라이프스타일 호텔이 서울에도 몇몇 존재하지만 ‘창의성’과 ‘순발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대기업에서 L7홍대와 같은 ‘말랑한’ 호텔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진심 놀라운 일이다.

L7홍대는 ‘상생3.0’의 첫 발을 뗐지만 아직 ‘완전체’는 아니다. 아니, 라이프스타일 호텔이라는 장르는 ‘완전체’가 성립할 수 없다. 그 자체가 숨을 쉬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롯데호텔이 L7을 차별화된 브랜드로 키워내 국내 호텔업계, 아니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호텔그룹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연약한 ‘유기체’를 잘 키워내야 미래가 보인다. 그 방법은 ‘상생’, 즉, 서로가 서로를 돕기 위해 손을 내미는 것 이외에는 길이 없다.

_ 전경우 스포츠월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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