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와 문화융성.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내걸었던 국정 운영 과제다. 알쏭달쏭 뭔지 모를 이 단어는 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내 손가락질을 받다 최근 불거진 최순실 게이트로 시궁창에 내쳐졌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이 단어들이 왜 튀어 나왔을까? 우리 사회는 벽에 부딪혔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과거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 다음 바통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 역시 가장 큰 미션은 경제 활성화로 귀결된다. 그래서 ‘창조경제’라는 단어가 나왔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문화융성’의 깃발이 나부꼈다.

호텔 업계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사정은 비슷해 보인다. 벽에 부딪혔다. 20세기에 만들어진 호텔 비즈니스 모델은 세상이 변해 가면서 엇박자가 나기 시작했다. 과거의 호텔 비즈니스는 예측가능하고 안정된 사회 구조와 수요에 비해 모자라는 공급, 양질의 저임금 노동력이 뒷받침 되어 성장한 부분이 강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한 시대가 왔고 공급 과잉 시대가 왔다. 저임금으로 고효율 노동자를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 역시 호텔 산업의 위기를 불러왔다. 호텔들은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 해법은 바로 ‘창조경제’다.

호텔업계가 시도하고 있는 창조경제는 그 모습이 다양하다. 위기를 인식한 조직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구조 조정은 인원감축이나 아웃소싱처럼 군살을 빼는 형태도 있지만 반대로 몸집을 불리는 방법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메리어트가 스타우드를 합병해 공룡으로 거듭난 것이다. 4~5년 전 이런 상황을 예측했던 이는 아무도 없다. 빅딜은 말 그대로 업계의 지형도를 통째로 바꿔 놓을 수 있는 힘이 있다. 파괴적인 변혁은 창조를 위한 동력이 될 수 있다. 뭉쳐야 살아남는다는 것 역시 고전적인 진리다.

▲ JW 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의 딸기 뷔페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는 것 역시 창조경제다. 최근 국내 호텔들 사이에서 열풍처럼 번지고 있는 딸기 뷔페 같은 것 말이다. 서울은 딸기가 특산물인 도시가 아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딸기 뷔페라는 프로모션이 대부분 특급호텔에서 진행된다. 딸기의 품질로 승부를 벌이기도 하고 메뉴의 다양성으로 차별화를 삼기도 한다. 혹은 JW 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처럼 바비인형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파트너와 제휴를 맺는 사례도 있다. 다른 나라, 다른 도시 호텔 업계에는 없는 상황이다.

OTA의 영향력이 커지며 수익성이 떨어진 국내 호텔업계는 패키지에 목숨을 건다. 직판으로 판매되는 패키지 상품은 수수료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 호텔업계는 연중 패키지와 허니문 패키지, 점유율이 낮은 특정 기간을 위한 패키지만 존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우리나라 호텔들은 일 년 내내 온갖 종류의 패키지가 쏟아져 나온다. 마치 패키지 공장 같다. 패키지 구성은 호텔 내부의 자원과 자연적인 환경, 외부의 제휴처 등 모든 것이 융복합된 결과물이다. 담당자들의 근성과 창조력을 겨루는 싸움, 바로 그것이 ‘창조경제’다.

‘문화융성’역시 호텔 업계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과제다. 세상이 바뀌는 속도가 빨라지며 호텔들은 더 이상 탁월한 입지와 하드웨어를 장점으로 내세우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경쟁자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정보가 제한적으로 공급했던 시절 호텔들은 약점을 감추는데 능숙했지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모든 속살이 고스란히 공개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 집단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렸다고 그들 탓만 했던 호텔은 현실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커뮤니티가 나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그런 시대인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지금은 문자 위주의 정보가 유통되지만 영상 위주의 ‘꿀정보’들이 넘쳐나기 시작한다면 호텔은 거의 발가벗은 상태로 손님을 맞이해야하는 상황이 온다.

ICT 기술을 토대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은 호텔 업계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예약과 결제 시스템이 무한대로 확장 중이며 호텔 운영은 자동화의 고도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인간이 했던 일들을 기계가 대신해 더 빠르고 정확하며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이 가능해진 시대다. 하지만, 인간에게 만족을 준다는 것은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돈도 기술도 그 어떤 매뉴얼도 이 부분을 완벽에 가까운 수준으로 만족 시키지 못했다.

등급을 보고 들어오던 고객들은 이제 브랜드를 따지기 시작했다. 호텔은 과거에 고객들에게 공간과 물질을 팔았지만 이제 시간과 경험을 팔아야 살아남는다. 이는 규모, 입지와 상관없이 거의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럭셔리 호텔의 주요 고객층이 소규모 부티크 호텔이나 에어비앤비,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곳에 더 훌륭한 객실과 음식, 보안과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데 왜 돈 많은 손님들은 그 곳에 머무르고 싶어 할까? 이 부분을 간과하고 넘어간다면 분명 더 힘든 상황이 찾아올 것이다.

브랜드의 전달력과 차별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지금 힐튼과 인터컨티넨탈, 하얏트와 메리어트의 브랜드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반인이 몇이나 될까? 심지어 호텔리어들도 이들 브랜드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브랜드의 차이를 인지할 뿐이다. 고객들에게 차별점을 확실히 어필하지 못하는 브랜드는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는 뒤쳐지기 시작한다. 이는 모든 산업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실이다. 브랜드 인지도와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한 호텔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가격을 낮추는 것 뿐이다. 가격 경쟁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운영비용을 줄이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하는데 수요가 일 년 내내 꾸준하지 못한 국내 시장 상황은 이마저 녹록치 않아 보인다.

위에 언급한 문제를 움직이는 열쇠는 결국 사람이 쥐고 있다. 무한에 가까운 능력이 있는 인간의 힘, 호텔리어를 믿고 가는 방법 아니면 답이 없다. 인간에 대해 더 공부하고 이해하며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라는 단어로 돌아가야 한다. 이 문제는 호텔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많은 미래 학자들이 거론하고 있는 ‘5차 산업혁명’의 예상 시나리오 중 하나다. 모든 것이 고도화된 4차 산업혁명의 약점은 인간의 감성에 대한 몰이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다시 인간과 우주에 대해 성찰하고 공부하는 것이 유일하다. 인문학과 예술은 이를 위해 존재하는 훌륭한 도구다.

▲ 워커힐 호텔 라이브러리

▲ 워커힐 호텔 라이브러리

최근 워커힐이 호텔 내부에 만든 도서관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최근 호텔업계와 사회 전반적인 상황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호텔 객실 내부에서 진행되는 아트페어에 가본 경험이 있다면 호텔을 찾는 고객층이 예술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많으며 기꺼이 지갑을 열고 시간을 할애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수긍할 것이다. 하지만 국내 호텔업계는 ‘예술’이라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부분에서 너무도 인색하거나 오너 개인의 취향에 의존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오래된 건축물이 갖는 예술성 같은 것도 노후화된 시설물을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논리에 묻히는 것도 가슴 아픈 현실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라이프스타일을 표방하는 호텔들이 생겨나며 콘텐츠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명확해 보인다.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예산과 인원의 분배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마케팅 담당자에게 이 부분을 의지하는 것은 20세기적인 발상이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지속적인 성장을 원한다면 더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에 실패했다고 호텔 업계가 똑 같은 전철을 밟을 수는 없다. 온 우주가 감동할 때까지 노력해 봤는지 스스로 되물어 볼 시점이다.
_전경우 스포츠월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