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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보고 한 발을 올려야 결국 오를 수 있다오크우드 프리미어 인천 박지근 이사
최종인 기자  |  hotell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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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18  09: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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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배운다는 건 막연히 오르막길을 오르는 게 아니다. 일정 기간 동안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같은 위치에 있다가 갑자기 한 계단, 두 계단 오르게 된다. 약간의 노력으로 바로 성과를 보려고 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오랜 노력이 계단을 오르는 원동력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꾸준히 자신이 올라야할 계단을 바라봐야하는 게 중요하다. 그게 바로 앞 한 걸음이든, 그 이상의 높은 꼭대기이든.

   
▲ 오크우드 프리미어 인천 박지근 이사

우스갯소리로 먹고 살려면 번듯한 기술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박지근 이사는 그 시절에 선택한 것이 요리라고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거나, 공무원을 하거나 하는 다른 길도 있었지만 그가 처음 발을 내디딘 곳은 바로 호텔이었다.

“호텔에서 웨이터로 3개월 간 일을 했습니다. 지금이야 진입장벽이 많이 낮아졌지만 35년 전, 당시 호텔은 그야말로 VVIP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요. 그래서인지 어린 저는 고객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홀과 주방을 오가면서 주방의 조리사는 홀로 나와 고객과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조리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죠. 참 단순한 결정이었습니다.”

어쨌든 박지근 이사는 기술 중 요리를 선택했다. 물론, 가족의 반대도 있었다. 남자가 주방에 들어간다는 것에 반감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텔의 주방에는 남자 조리사가 수십 명이 들어서 있다는 걸 강조했다. 그렇게 박지근 이사는 요리사로서의 길에 들어섰다.

“처음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습니다. 선배가 알려주는 레시피가 바로 법이 됐지요. 책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니까요. 다행히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책이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서적이 5000원이라면 요리전문 서적은 원서가 5만 원 가까이 했었죠.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선배들이 알려준 레시피는 주방장으로 메뉴를 짜면서 금방 바닥이 났으니까요.”

1988년 강남에는 새 호텔 붐이 일었다. 지금은 없어진 르네상스 호텔에 박지근 이사는 오픈 멤버로 참여했다. 이미 타워호텔을 시작으로 8년 정도 호텔 경력을 쌓은 그였지만 더 크고 화려한 호텔로 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르네상스 호텔에서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토스카나에서 근무하게 됐다. 당대 밀레니엄 서울힐튼의 일폰테와 함께 1~2위를 다투는 레스토랑이었다.

“처음부터 토스카나의 수셰프로 간 건 아니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퍼스트쿡으로 가게 된 거죠. 위에 있던 주방장이 3~4개월 있다가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서울로 이직을 해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낮은 직급임에도 임시로 그 직책을 대신할 수 밖에 없었지요. 당연히 업무량이 늘고 책임이 따랐습니다. 당시 호텔에는 외국인 셰프가 많았는데 전임자와 후임자가 인수인계를 반드시 했죠. 기존에 있던 외국인 셰프가 좋게 말해줬는지 바로 승진을 하게 돼서 4개월 만에 수셰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수셰프가 되니 책임감이 자연스레 생겼다. 인천에서 역삼까지 출근하기 위해 그는 아침 5시면 일어나고, 업무를 마감하는 10시에 퇴근하면 집에 12시에 도착하기 일쑤였다. 그런 와중에도 7~8명 되는 외국인 셰프들과의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영어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영어야 쉽게 이해하고 말할 수 있지만, 휴가의 이유라든지, 직원들의 문제나 고민 등을 대화하기 위해서는 영어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젊은 나이라 패기가 넘쳤습니다. 외국인 셰프들에게 궁금한 것도 참 많았지요. 책을 보면 이게 정통방식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들이 만들어낸 접시는 매번 다르게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왜 정통방식이 아니냐 따졌는데 지금 생각하면 제가 너무 얕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우리나라 김치만 하더라도, 서울식, 전라도, 경상도 등 지역마다 다른데 모두 김치라는 하나의 음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도전적인 박지근 이사를 많은 이탈리안 셰프들이 좋아해주었다. 박지근 이사도 이탈리안 세프들과 잘 맞는다고 느꼈다. 삼면이 바다이고 남북으로 기다란 국토를 가진 부분부터 사계절에 맞는 식재료와 다혈질적인 성격에 매운 음식을 잘 먹는 등 한국인과 이탈리안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박지근 이사도 이탈리아 태생은 아니지만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어느 정도 입맛으로 따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특히 파스타를 아주 잘 만드는 이탈리안 셰프와 각별히 친해져 그에게 많은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었다.

“서양인들은 음식을 먹을 때 맛과 향을 동시에 즐기지만 한국인은 미각, 혀로 느끼는 맛을 더 중시합니다. 그러다보니 이탈리안 음식을 짜게 느끼는 경우가 많지요. 특히 과거에는 이탈리아 음식이 지금처럼 대중화되지도, 또 고객들이 해외에서의 경험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기 때문에, 음식의 짠 정도로 컴플레인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파스타 같은 경우 ‘국수인데 면을 다 익혀서 나오지 않는다’는 말도 들어봤습니다.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이탈리안 셰프들이 쉽게 그들의 방식을 굽히지 않았지만 제가 꾸준히 절충을 하고 실력을 발휘하면서 그 중간지점을 맞추기 시작했죠.”

지금도 박지근 이사가 제일 자신 있어하는 요리가 바로 파스타와 스테이크다. 그래서 인생을 대표하는 메뉴로 그는 뼈가 붙은 립아이 스테이크를 자신있게 선보였다. 두툼한 스테이크에 언뜻 봐도 많아 보이는 양은 그가 꾸준히 상대해왔던 외국인 고객들의 취향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다. 르네상스 호텔에서의 경력 동안 토스카나에서의 이력은 그에게 황금기와 다름이 없는 순간이다. 10명의 주방에서 최고의 이익을 냈으니까. 호텔의 레스토랑이 하루에 2.5회의 회전율을 보이고 식사를위해 한 시간 가량 로비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는 손님도 있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제발 토스카나에서 근무하게 해달라는 청탁도 많이 들어왔다. 근무를 하기만 하면 승진은 당연지사였다.

   
▲ 립아이 스테이크

“그렇게 서른네 살에 과장을 달았습니다. 다른 업장에서는 마흔 살의 주임도 많았는데 말이죠. 당시에는 저렴한 식재료와 인건비, 거기에 현지 주방장이 자리하고 있으면 많은 고객이 찾아오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만드는 기술이 꾸준히 발전했고 즐겁게 요리를 했습니다. 외국인 셰프들은 구내식당이 아닌, 셰프테이블에 모여 같이 식사를 했는데 제가 일주일에 두세 번을 담당할 만큼 제 요리를 좋아해주었죠. 제가 만드는 파스타가 더 맛있다는 말도 종종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르네상스의 시절이다. 토스카나에서 카페인 엘리제, 프렌치 레스토랑까지 트랜스퍼를 통해 호텔에 근무하던 그가 갑자기 암초를 만난 건 과로였다. 열심히 달려온 삼십대, 사십대 중반에 들어서자 몸이 예전 같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는 황금기인 시절을 지나 르네상스 호텔에서 나오게 됐다.

“1997년 12월 17일입니다. 당시 매출도 기억해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하루에 1350만 원의 최고 매출을 올렸습니다. 오전 두 명, 오후 네 명이서 일궈낸 성과입니다. 점심, 저녁 먹을 엄두도 내지 못했죠. 여전히 인천에서 출퇴근을 했는데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다 쓰러졌습니다. 그 후유증이 5년을 갔지요. 더 이상 과거처럼 일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잠시 휴식을 갖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까지 호텔 외의 곳에서 그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조금 더 외국인과 가까우면서 업장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아담한 오크우드 프리미어 코엑스 센터다.

“오크우드 프리미어 코엑스 센터에 갔을 때도 총주방장의 자리로 간 게 아니었습니다. 외국인 총지배인에게 총주방장을 시켜달라고 했는데 이미 외국인 내정자가 있고 한 달 뒤에 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행운인지, 불운인지 외국인 총주방장이 건강에 문제가 생겨 늦게 입국하게 됐습니다. 석 달 정도 총주방장을 대신해서 제가 업무를 대행한 것이지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총지배인은 제가 총주방장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는지, 외국인 총주방장 임명을 취소하고 제가 총주방장으로 근무하게 됐습니다.”

처음부터 그 자리가 아니었지만, 항상 다음 계단을 준비하는 박지근 이사였기에 총주방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총주방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오크우드 프리미어 코엑스 센터에서는 좀 더 고객과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초창기에는 레지던스 호텔이라 투숙객만을 대상으로 했었던 것도 있고, 그가 2년 뒤 홀 매니저를 대신해 매니저와 총주방장을 동시에 담당하는 F&B 디렉터의 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2010년부터는 내국인에게도 레스토랑이 오픈됐지만 그 전까지는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피드백이 바로바로 들어왔어요. 또 단품으로도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게 포션이 커졌습니다. 그 동안의 호텔과 다소 달랐지만 그 만큼 좀 더 가족적인 분위기가 있었죠. 그렇게 고객과의 접점이 많아지자 홀 매니저도 담당하게 됐습니다. 처음 웨이터를 했을 땐 겁이나 주방으로 숨었던 제가 다시 주방에서 홀까지 아우르는 사람이 된 거죠.”

그리고 그렇게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박지근 이사는 새로이 오픈하는 오크우드 프리미어 인천에 2014년 5월부터 합류했다. 새로운 호텔에 대한 기대가 컸고 더 많은 객실과 연회장, 더 큰 식음 공간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박지근 이사의 지식과 경험이 반드시 필요한 프로젝트였다. 또, 그간 꾸준히 인천에서 서울까지 출근을 했던 그에 대한 회사의 배려이기도 했다.

“많은 동료 총주방장들이 앞으로의 미래를 후배양성에 대해 말하곤 합니다. 저는 일을 관둔다는 의미가 아닌, 자리에서 물러나주는 게 후배양성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인천으로 오면서 코엑스센터에는 홀 매니저와 주방장 등 새로운 팀장들이 생겨나게 됐지요. 제가 현직에서 꾸준히 한 계단씩 오른다면 그 계단 아래로 후배들이 올라갈 길이 생겨날 거라 믿습니다.”

박지근 이사는 늘 다음으로의 계단에 발을 올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어느 정도 올라선 지금 그의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친구들과 함께 모터바이크를 타고 전국일주를 하는 것. 꽤 높은 계단 위에서 지나온 계단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게 그의 개인적인 소망이다.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he Story of Executive Chefs’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he Story of Executive Chefs’은 28년 연속 가축 질병 제로, 농축산 분야 세계 최초로 유엔이 인증한 지구 온난화 방지 기후협약 실천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한 고품질의 프리미엄 돼지고기를 세계 45개국 특급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에 공급하고 있는 칠레 최대의 농축산 기업 ‘아그로수퍼’와 호텔 요리 트렌드의 공유는 물론 한국 식문화와 조리 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내 특급호텔 현직 총주방장 모임 ‘셰프테이블’이 후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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