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훌륭한 선배 기자 한 분이 성탄 시즌 패키지를 모아서 썼던 기사 제목을 빌려 이번 컬럼 대문에 달아본다. 패키지 관련 기사 제목 중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아서…….

호텔 담당 기자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보도자료는 ‘패키지’다. 온갖 호텔 담당자들이 ‘저희 패키지 좀 잘 써주세요’라고 애원과 부탁과 협박을 해온다. 그 ‘패키지’가 뭐 길래 매년 저렇게 난리를 치는 걸까? 이번 달에는 패키지를 깊게 파봤다.

여름 패키지 판매 전쟁은 우리나라 호텔업계만의 특징이다. 인터내셔널 체인 호텔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면 다른 나라 호텔업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케이스는 없었다. 그저 ‘코어 패키지’ 개념으로 연중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파는 패키지가 있거나 허니문 패키지 정도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항상 과거에 집착하는 습관대로 옛 기사부터 뒤적거렸다. 호텔 패키지와 관련해 옛 기사를 오래된 순서로 찾아보니 1980년 7월 30일자 경향신문 기사가 올라왔다. 제목은 ‘여름을 세일 합니다’. 내용을 보자.

'시중 호텔업계의 불황이 심화되자 일부 호텔에서는 가족피서객, 신혼부부를 상대로 서머패키지 프로그램이라는 이색적인 객실 판매 전략을 도입, 앞 다투어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H호텔의 경우 지난 7월 초순부터 ‘바캉스는 가까운 서울에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2박3일 또는 3박 4일 기간 동안 숙박/아침식사는 물론 수영장 등 호텔 부대시설의 무료 또는 할인 이용권을 포함해서 단순 객실요금보다 20~30% 싼 서머 패키지프로그램을 마련, 이미 실시하고 있으며 L호텔도 이달 말부터 1개월간 허니문 바캉스, 가족프로 등의 이름으로 각종 패키지 프로그램을 마련, 실시할 예정이다.'
 

라고 나온다. 그렇다. 초창기 국내 호텔들의 패키지 상품은 외국인 고객에게 의존하던 매출이 급감하는 여름 휴가철에 객실을 채우기 위한 방편이었다. 경향신문 기사에 등장한 H호텔, 당시 하얏트 리젠시 서울의 기록을 살펴보기 위해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 도움을 청했다. 친절하고 똑똑한 권모 지배인은 이런 답변을 보내왔다.

'문서 기록상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가장 오래된 패키지는 2004년에 개발한 여름, 겨울 패키지다. 외국 기업의 방문객이 주를 이루는 특급 비즈니스 호텔의 특성상 계절에 따른 호텔이익의 차이를 좁히고자 비수기에 국내 고객을 대상으로 패키지를 개발하게 된 것이 패키지 개발의 주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호텔의 비수기는 여름과 겨울이다. 호텔은 국내 휴가철에 맞춰 호텔내의 레저시설을 적극 활용하여 패키지를 내놓았고, 뜨거운 반응을 얻자 현재까지도 거의 동일한 구조의 패키지를 내놓고 있다. 2000년대 초반의 패키지는 수영장, 아이스링크, 제이제이 마호니스, 테라스 등 시설 이용 혜택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월드컵과 같은 국가적인 행사, ‘파리의 연인’, ‘연애시대’ 등 대국민적 사랑을 받으면서 당 호텔을 촬영지로 활용한 드라마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여 패키지를 구성하기도 했다. 서울 시내에도 특급 호텔이 손에 꼽던 시절,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허니문 패키지 역시 갓 결혼한 신혼부부의 특별한 날을 위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서머 패밀리 패키지 이미지

초창기 패키지는 ‘할인’에 포커싱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 초반부터 변화가 생긴다. 2003년 한국경제 기사를 보면,

'웨스틴조선호텔이 올들어 패키지 부문에서 전년대비 84%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부산조선호텔의 경우 패키지 판매실적이 무려 2백58%나 늘어났다. 올해 2월~4월 두 달 동안 주말 판매량은 3백92객실로 지난해 1백65객실에 비해 무려 3백8%가 늘어났다. 20만~30만원 정도인 객실가격에 비해 최고 3배이상의 선물을 받는 셈이다. 주말상품 등은 주요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허니문 패키지는 결혼정보회사와 연계하는 등 타깃에 맞춰 판매채널을 다양화 했다.'

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결국 실적이 나오니까 패키지를 만드는 것이며, ‘객실 할인과 식사, 부대시설 무료이용’에서 ‘외부 제휴처에서 제공된 선물 제공’으로 패키지의 구조가 변했다.

폭발적으로 성장을 계속한 호텔 패키지 시장은 2010년 전후로 다시 큰 변화를 겪는다. ‘가족’을 중심에 두고 각종 체험형 프로그램을 강화한 것이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다. 야외 수영장을 보유한 서울의 호텔들과 제주, 부산의 리조트형 호텔들이 주도한 ‘패밀리형 패키지’는 순식간에 호텔업계 전체로 번졌다. 제주와 부산의 호텔들은 체험형 프로그램을 전담하는 팀을 꾸렸고, 계절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해 지금은 마치 백화점 문화센터를 방불케 할 정도다.
고객들이 ‘패키지’라는 상품에 완벽히 적응하게 되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비수기를 탈피하기 위해 만든 패키지가 국내 레저고객 입장에서는 1년 내내 필요한 존재로 바뀐 것이다.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에 익숙해진 고객들은 이제 OTA를 검색해 ‘최저가’를 찾기 보다는 호텔이 직판하는 채널에서 판매되는 ‘패키지’의 혜택이 더 크다는 부분을 체감하며 연중 다양한 패키지의 판매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OTA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는 패키지 상품은 호텔 입장에서 수익률이 높다. 호텔 내부에서 체류 시간을 늘리면 식음 업장 매출에도 유리하다. 고객의 요구와 시장의 변화에 따라 호텔들은 더 많은 패키지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패키지를 만드는 작업에 점점 많은 인력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 그랜드 하얏트 인천_ 짐보리 월드

패키지는 누가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그랜드 하얏트 인천의 경우 객실 패키지 기획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팀에서 담당한다.(거의 모든 호텔들이 '마컴' 혹은 '마케팅'에서 이 업무를 진행한다.) 이 호텔에서 ‘패키지공장장’ 역할을 했던 김모 지배인은 꽃 같은 나이의 싱글이지만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일 년에 두 차례 이상 유아교육전, 베이비 페어 행사장을 전전한다. 관련 업계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과 함께 수많은 아기엄마들을 붙잡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다. 패키지 판매 시기, 타깃팅하는 고객의 특성, 그 고객이 주로 필요로 할 서비스와 상품, 이전 패키지에서 고객의 피드백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자녀와 함께 놀 공간을 필요로 하는 가족 고객을 위해 짐보리 월드, 닌텐도 플레이존 등의 액티비티를 포함한 여름 패키지다.
방향 설정 및 구성 기획을 마쳤다면, 패키지 구성에 따라 객실부, 식음료부, 조리부, 그리고 수익관리부 등의 부서와 협의를 통해 기간, 가격, 판매 채널, 운영 방안, 연계 프로모션 등의 세부 사항들을 결정한다. 물론 각 부서에서 생각하는 가격, 직원들의 서비스 가능 여부 등이 다른 경우도 있고, 함께 진행하는 타 브랜드와 원하는 바가 다를 수 있지만 이 모든 의견을 조율하는 그 어려운 일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팀이 또 해내야 상품이 나온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팀은 패키지 개발 완료 후, 호텔이 목표한 만큼 판매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다양한 온오프라인 홍보활동을 진행한다. 패키지를 기획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팀에서 각 부서 대상으로 패키지 관련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키즈 패키지 이미지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패키지 제작 공정은 조금 특이하다. 총지배인이 각 부문 팀장급들을 불러 모은 TF에서 패키지가 나온다. 직원들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결정권자가 직접 진행하면 일을 두 번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은 위 TF 회의 결과 키즈 프로그램을 중시하는 국내 상황을 적극 반영한 패키지 상품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별도의 키즈 라운지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중소형 호텔들 역시 패키지 상품에 관심이 많다. 여름 시즌 외국인 고객들이 줄어드는 상황은 마찬가지다. 패키지는 ‘콘도’라고 통칭하는 리조트 업계에도 있고, 모텔에도 있다. ‘귀찮음’을 극도로 싫
어하고 ‘개이득’을 언제나 추구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패턴은 어느 카테고리나 똑같기 때문이다.
_ 전경우 스포츠월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