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을 뒤적였다. 어떤 매거진 에디터 계정에서 해시태그 하나가 눈에 띄었다. #hotel life…… 검색을 해보니 끝없이 많은 사진이 나온다. 뒤죽박죽, 맥락 없어 보이는 가운데 맥락이 있다. 한 달 내내 ‘Hotel life’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여러 호텔을 방문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이 화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두서없이 떠도는 생각들을 일단 정리해 봤다.

#1. ‘Lifestyle hotel’은 어디에? 현혹되지 말라
‘Hotel life’라는 단어보다 익숙한 단어는 ‘Lifestyle hotel’이다. 우리나라에서 ‘라이프스타일 호텔’이라는 단어는 ‘부티크 호텔’이나 ‘디자인 호텔’에 식상해서 나온 듯 하다. ‘부티크’라는 단어가 휩쓸고 지나간 시기에는 특1급부터 모텔, 펜션까지 모두 이 단어를 썼다. 그러다 최근 등장한 중소형 호텔들을 중심으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수식어를 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호텔 카푸치노와 롯데의 L7이다. 두 곳 모두 가봤다. 뭔가 스타일은 있는 것 같은데 라이프는…… 솔직히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라이프스타일은 걍 알아서 만들어야 하는건가 보다.

#2. hotel life=호텔 생활=‘있어빌리티’
호텔에서 생활한다는 개념이 뭘까? 인스타그램 사진들을 다시 찾아본다. 공통점은 하나. ‘있어빌리티(있어보인다+Ability·능력)’라는 신조어로 귀결된다. 좋아 보이는 공간, 음식 등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사진들이 담아낸 피사체는 호텔이 제공하는 ‘상품’이다. 돈을 내고 ‘있어빌리티’를 구매해 SNS에 올리는 것. 그것이 내가 가장 먼저 찾아낸 ‘호텔 라이프’다.
이 부분을 가장 빠르게 캐치해 상품에 적용한 호텔은 JW 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이다. 이 호텔 홍보부에는 SNS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 임모 대리가 있다. 그녀는 호텔 출신이 아닌 패션업계에서 건너왔다. 어찌 보면 호텔 산업에는 문외한이지만 젊은 고객들이 원하는 부분(‘있어빌리티 구현’)을 정확하게 집어냈다. #동리엇, #동리엇컬쳐, #동리엇만만세 #동리엇수영장 이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최근 이 호텔에서 벌어진 다양한 일들이 보인다. 한마디로 ‘스타일리시’하다.
서울의 특1급 호텔 중 가장 활성화된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는 비결이 뭘까? 일단, 상품/프로모션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SNS를 염두에 뒀던 결과다. ‘살롱드딸기’ ‘갈비가든’ ‘살롱드빙수’등 다양한
프로모션은 이러한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임대리가 말하는 호텔 라이프는 오프라인 현실이 아닌 SNS로 확장된 개념이다. 이 부분에서도 고객들의 만족을 끌어내야 ‘21세기형 호텔라이프’가 완성된
다는 뜻이다.
SNS는 양방향 소통을 기본으로 삼는다. SNS 공간에서 ‘호텔라이프’를 구현하려면 대행사를 써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보통은 일주일, 심하면 1개월치 콘텐츠를 미리 만들어 놓고 하나씩 올리는 개념으로는 소통을 원하는 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그저 스팸이고 돈 낭비(라고 쓰고 ㅈㄹ이라고 읽는다)에 불과하다. SNS, 특히 젊은 고객들이 많이 쓰는 인스타그램에 최적화된 프로모션을 기획하다 보면 ‘호텔스럽지 않다’ ‘브랜드 스탠더드’에 어긋난다는 지적에 시달릴 각오를 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살짝 지쳐 보이는 그녀에게 내가 해준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브랜드 스탠더드는 성경책처럼 종결형이 아니라 업데이트 되는 진화형 아닌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한 마디 덧붙였다.
“브랜드 스탠더드가 업데이트 되는 가장 절대적인 기준은 ‘Revenue’ 아닌가요?”

#3. 그렇다면, ‘호텔스럽다’는 뭘까?
‘호텔스럽다’는 화두를 가지고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딱 떠오르는 공간이 있었다. 남산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서울이다. 최근 아름다운 석양이 지던 날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자랑 풀사이드 뷔페를 먹으며 ‘아! 얼마나 ‘호텔스러운’공간인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같이 식사를 했던 미모의 호텔리어는 “삶이 펼쳐지는 하나의 공간이지만 어디서든 나를 케어해 준다는 그런 느낌이 드는 곳”이라고 그랜드 하얏트 서울이 제공하는 ‘호텔 라이프’를 설명했다.
이 호텔이 호텔다운 이유는 일단 ‘넘사벽’인 탁월한 입지나 건축, 인테리어의 아름다움이 1차적인 요소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호텔리어가 있다. 칠흑같이 검은 옷을 입고 있거나 튀지 않는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호텔의 아우라를 완성한다. 그들은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직원같은 느낌보다는 호텔을 구성하는 요소의 일부분처럼 보인다. 밥에 약을 타지 않았는데도 유독 로열티가 강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여관 종업원 개구리들처럼 신비로운 존재다.

#4. ‘hotel life’를 찾는 사람들
페이스북에서 희한한 모임이 눈에 띄었다. ‘Creative Hotel & Design . TALK’다. 모임 장소는 상도동 핸드픽트호텔 서울. 토요일 아침부터 50명 남짓 되어 보이는 인원이 모였다. 호텔 관련 디자이너, 시공업체, 세일즈 지배인, 신흥 강자로 떠오른 중소형호텔 총지배인, 미디어 등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었는데 의사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밥을 먹으며 물어보니 ‘호텔이 좋아서’ 모임에 참석하셨다는 답변이다. 진정한 ‘호텔 라이프’는 이런 것인가? 나는 아직 ‘쪼렙’인가보다.
김성호 핸드픽트 호텔 총지배인은 “성별 나이 소득 타깃이 아니라 취향을 공유하는 것”을 내세운다. 그는 대표이사, 오너를 겸한다. 호텔이 세워진 땅에는 그가 태어나 살던 집이 있었다. 상도동 토박이다. 그는 국내외 다양한 호텔들을 상대로 컨설팅 업무를 수행한 커리어가 있다. 핸드픽트 호텔은 그가 클라이언트였던 메이저 호텔들에게 ‘호텔스럽지 않다’ ‘브랜드 스탠더드에 맞지 않다’고 까였던 아이디어들을 되살려 콘텐츠를 쏟아 부은 결과물이다. 그가 집중하고 있는 개념은 ‘Neighborhood hotel’이다. ‘Local life’가 결국 여행자들이 추구하는 ‘Hotel life’라는 이야기다.
김성호 대표가 생각하는 ‘호텔 라이프’는 ‘생태계’다. 그가 벤치마킹한 사례는 에이스 호텔도 아니고 호텔 아메리카노도 아니다. 아마존이 12억 달러에 인수한 벤처기업 자포스가 모델이다. 자포스의 ‘다운타운프로젝트’는 직원이 늘어 새 사옥이 필요하게 된 시점에 출발했다. 뻔한 사옥에서 탈피하려 고심하던 자포스는 뉴욕대학 캠퍼스를 롤모델로 삼았다. 뉴욕대학 캠퍼스는 건물은 몇 개 없지만, 카페와 부티크, 갤러리가 줄지어 있는 하나의 독립된 미니 도시다. 자포스는 문 닫은 카지노 모텔이 즐비한 라스베이거스 구도심에 무려 3억5000달러(약 4000억 원)을 들여 건물을 매입한다. 이 실험적인 공간에 스타트업 기업, 아티스트들은 열광했고 몰려온 사람들은 서로 시너지를 주고받았다. 죽은 도시는 어느덧 힙스터의 공간으로 변했다. 로컬라이프와 여행객이 어우러져 호텔과 주변,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꿈같은 말이지만 조금씩 현실로 구현되고 있는 중이다.
김성호 대표가 내준 커피는 산뜻했다. 호텔 부근 로스터리 카페에서 공급받는 커피다. 단골 투숙객 중에서 뒷집 할머니도 있다. 이미 수많은 외국인 여행자들이 핸드픽트 호텔 특유의 ‘다세대 주택뷰’의 매력에 중독됐다.
핸드픽트호텔은 이미 작은 성공을 거뒀다. 이것은 아이디어만 있어서 되는 부분이 아니다. 핸드픽트는 건축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이다. 충분히 ‘호텔스러웠고’ 제공되는 컨텐츠는 고급스럽고 로맨틱하다.

#5. Bravo your smoking life!
자고 나면 하나씩 생기는 것이 서울의 호텔이지만 얼마전 오픈한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은 아주 아주 특별하다. 직선을 강조한 건축의 독창성이 눈에 띄고 인테리어도 군더더기 없이 훌륭하며 가구와 비품, 욕실도 가격대비 만족스럽지만 특별한 이유는 건물 내부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
애연가들에게 최근 몇 년은 일제 강점기에 가까웠다. 건물 내부에서 흡연권을 빼앗긴 이후 대로변에서 조차 감시와 단속의 눈길을 피해 쫓겨 다녀야 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 도시의 그림자에 숨어 담배를 피워야 하는 현실에서 흡연가들에게 이 호텔의 존재는 상해임시정부처럼 든든하게 다가온다.
호텔 내부에 3개의 럭셔리한 흡연실이 갖춰져 있고 공조장치에는 한국적 디테일까지 집어넣었다. 고객이 이용하는 공간 어느 하나 허투루 두지 않는 ‘호텔스러움’의 극치 아닌가! 더구나 전체 10% 정도는 흡연 객실로 운영된다.
아직도 상당수의 고객들이 담배를 피우는 상황이다. 건물 내부 전면 금연을 실시하고 외부 흡연공간조차 ‘혐오시설’로 여기는 호텔들에게 묻고 싶다. 호텔은 기본적으로 관리자, 운영자의 입장이 아닌 고객의 ‘호텔 라이프’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것 아닌지 말이다.
_ 전경우 스포츠월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