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식동원은 약도 먹는 것도 그 근원은 하나라는 생각을 뜻한다. 호텔 프리마의 주방을 책임지는 윤경호 총주방장은 제철에 나는 재료를 가지고 고객의 취향뿐만 아니라 체질까지 고려하여 식단을 만들어내는 걸 중시한다. 음식은 약과 같다. 사람이 중심인 요리, 집밥을 차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이 바로 그의 철학이자 정신이다.

▲ 호텔 프리마 윤경호 총주방장

“저희 호텔은 처음이신가요?”

여느 총주방장과는 달리 업장이 아니라 로비에서 먼저 인사를 나누게 된 그였다. 익숙한 자리, 호텔 업장에서 맞이하며 곧장 인터뷰나 음식 촬영을 들어가지 않았다. 처음 방문이라는 말에 호텔을 먼저 안내하고 싶어 한 윤경호 총주방장의 뜻에 따라 호텔을 조금 거닐었다.

“90년대 후반 지금 대표이사이신 이상준 사장님이 취임하고 나서 호텔 프리마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먼저, ‘뮤지엄 속에 호텔, 호텔 속에 뮤지엄’이라는 콘셉트로 예술문화서비스에 많은 집중을 했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중소규모의 비즈니스 호텔로 보이던 곳이 내부는 미로처럼 웅장했다. 중간중간 멋진 그림이 걸려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1층에 위치한 환수문화재 전시장에는 놀랄 만큼 아름다운 우리의 명품도자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특별 전시관에 자리한 호텔 프리마 소장 달항아리 또한 일품이었다. 둥근 항아리가 보름달처럼 생겨 이름 붙은 달항아리는 2007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호텔 프리마가 낙찰 받아 80년 만에 고국으로 다시 가져온 작품이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호텔이지만, 안은 참 다양한 색을 띄고 있습니다. 호텔프리마는 고객이 편안하게 접근하고 그 안에서 감동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우선하지요. 지금 여기 이렇게 푸른 잔디와 나무들, 정원이 호텔에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을 했을까요?”

윤경호 총주방장이 안내한 곳은 호텔 안에 위치한 정원이었다. 햇살이 좋은 봄이라, 유독 푸른색이 짙어보였다. 일정을 변경해 그가 준비한 자신을 대표할 요리를 먼저 만나보았다. 평범하게 업장 테이블 위에서의 촬영이 아니라 야외에서 자연과 함께 촬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호텔 프리마의 식음철학은 약식동원입니다. 음식은 약과 같다는 것이죠. 코스트를 따지고, 내가 손님에게 보여주고 싶은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고객의 취향과 건강에 맞는 좋은 음식을 아낌없이 대접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호텔 프리마의 맛입니다.”

윤경호 총주방장이 가져온 요리는 보리굴비 정식이다. 바닷바람에 자연 건조시킨 뒤 통보리속에 보관하여 숙성을 시켰다. 보리향을 받아들인 굴비는 비린내가 없어지고 기름이 껍질로 나오며 감칠맛을 더한다.

“호텔 프리마에 근무하면서 저는 사장님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고객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직원을 대하는 태도까지. 마치 통보리 속에 둘러싸인 굴비처럼 자연스레 나쁜 비린내를 없애고 더 좋은 총주방장이 될 수 있도록 오랜 시간 숙성된 것이죠.”

어려서는 경찰이나 군인이 되고 싶었다. 윤경호 총주방장은 원칙을 중시하고 엄격한 성격이어서 지금도 몇몇 직원들은 그를 어려워하기도 한다. 그의 옛친구들은 총주방장이 된 지금의 그를 보고 많이 놀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찍 결혼을 한 탓에 빨리 사회에 진출해야 했던 그가 준비했던건 경찰공무원이었기 때문이다.

“생계를 위해서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지인의 레스토랑 일을 도왔습니다. 당시 주방장이 술을 좋아해서, 술을 마신 다음날 주방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거들면서 요리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양식에서는 ‘정식’이 유행했는데, 제가 담아 내가면 손님들이 ‘예쁘다, 아름답다’라고 하며 칭찬을 많이 하셔서 기분이 좋았지요. 이런 저를 보고 레스토랑 사장님이 요리학교를 추천했습니다.”

윤경호 총주방장은 학교를 다니며 은사를 만난다. 그 분은 지금 한국관광대학교의 이순옥 교수로, 그가 조리사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었다. 특히 그의 어린아이들까지 예뻐하며 윤경호 총주방장의 진정한 스승으로 마음속에 남게 되었다. 은사의 추천을 통해 호텔 주방의 길에 들어선 그는 신라호텔을 거쳐 1990년 호텔 프리마에 입사하게 됐다.

“당시 호텔의 주고객층은 지금처럼 사회지도층이 아니었습니다. 좀 더 음지에 가까운 편이었죠. 하지만 사장님이 새로 오시고 나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저에게는 호텔에서 일하면서 충격적인 일이었지요.”

세계를 주도하는 지식을 배우고 사고하는 기업. 새로운 사훈이 입에 익기도 전에 윤경호 총주방장은 스스로가 변해가는 걸 느꼈다. 결국, 모든 새로움의근본은 사람으로 향했다. 중식당에서 연회가 열렸다. 하지만 중식을 먹고 싶어하지 않는 고객이 있다면 그 고객을 위해 양식이나 한식 코스를 따로 차려주었다. 업장의 구분에 연연하지 않았다. 중식당이든, 양식당이든, 한식당이든 호텔 프리마에 왔으면 고객이 먹고 싶은 음식을 어디에서든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그만큼 주방에서는 힘들고 직원들도 더 신경을 써야하지만, 단순히 고객을 통해 수익을 보는 게 아닌, 마음을 얻는 서비스를 하자는 자세로 노력했던 것이다.

“VIP 고객 한 분이 큰 수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분이 도가니탕을 좋아했다는 기억이 나서, 사장님께 말씀드려 좋은 사골을 구해 팩으로 담아 끼니마다 드실 수 있게 선물로 보내드렸지요. 그 후 건강을 되찾아 호텔을 방문하셨을 때 제 손을 잡으며 고마워하신 그 온기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총주방장으로 호텔 프리마에 근무하며 느꼈던 자부심은 해외에서도 빛났다.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카자흐스탄에 호텔 프리마의 이름으로 워터파크 프리마조대악을 오픈, 운영을 위해 6개월간 현지에 머물렀던 기억도 윤경호 총주방장에게는 선명하다.

“카자흐스탄에 국내 로컬 호텔 브랜드로 이런 거대한 워터파크와 한식당, 연회장, 푸드코트 등을 오픈하고 운영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지요. 오픈 당일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셔서 저희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특히 많은 카자흐스탄 국민들이 한식당을 사랑해줘서 가슴 뿌듯했지요.”

▲ 보리굴비정식

호텔 내 정원에서 맛본 싱그러움은 윤경호 총주방장의 음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앞서 말한 약식동원의 정신처럼, 단순히 음식뿐만 아니라 식재료까지도 직접 호텔 프리마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30일에는 직접 장을 담그기 위해 메주를 만들었습니다. 여름이면 상추, 풋고추, 쑥갓 등 채소도 직접 가져다 쓸 예정이고요. 농약 하나 뿌리지않고 직원들이 번갈아 관리하며 키워내고 있습니다. 이런 건강하고 신선한 재료로 호텔을 찾는 고객에게 음식을 제공합니다. 엄청 화려하고 멋진 요리는 아닐 수 있지만, 그 어디의 음식보다 건강하고 정성이 들어갔다는 걸 고객이 알아줄 때가 가장 기쁩니다.”

정갈하게 담긴 보리굴비정식 촬영을 끝내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이동을 했다. 그곳에서 거대한 청보리 그림을 발견했다. 지금이라도 바람에 살랑 흔들릴 것 같은 청보리. 이런 우연이 있을까 싶어, 윤경호 총주방장을 그림 앞에 세웠다. 마치 보리에 둘러싸인 굴비처럼, 자연스레 호텔 프리마의 모든 정신을 자신의 몸에 담아 고객에게 선보이는 그와 무척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자, 사진 찍겠습니다.’ 윤경호 총주방장이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편안해보였다.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op Chef Summit for Young’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op Chef Summit for Young’은 28년 연속 가축 질병 제로, 농축산 분야 세계 최초로 유엔이 인증한 지구 온난화 방지 기후협약 실천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한 고품질의 프리미엄 돼지고기를 세계 45개국 특급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에 공급하고 있는 칠레 최대의 농축산 기업 ‘아그로수퍼’와 호텔 요리 트렌드의 공유는 물론 한국 식문화와 조리 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내 특급호텔 현직 총주방장 모임 ‘셰프테이블’이 후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