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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로 만들어진 가족이라는 사슬콘래드 서울 이승찬 총주방장
최종인 기자  |  hotell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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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10  10: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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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파스타라는 단어가 익숙한 시절이지만 당시에 서양식 면요리는 모두 ‘스파게티’를 대명사로 활용했다. 이승찬 총주방장은 스파게티가 마치 중국집에 자장면이 대표 메뉴가 되었듯, 밀가루 면요리를 사랑하는 우리나라 정서상 100% 성공할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무작정 이탈리아행을 결심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어 버렸다.

   
 

“요식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20대에 했습니다. 내 가게를 차리는 게 목표였죠. 그러다가 우연히 마주한 게 바로 ‘스파게티’였습니다. 90년대 중반 당시에는 이탈리아 요리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학교나 학원이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스파게티 하나만 석 달 동안 제대로 배워오자!’라는 생각으로 이탈리아를 갈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굳은 결심이 생기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탈리아어 학원 겸 유학원인 곳을 찾아가 당장 이탈리아에 보내달라고 했지만 유학은 여러 과정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다. 3개월 정도 어학수업을 들어야 유학상담이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승찬 총주방장은 스스로를 잘 알았다. 어학을 배우는 시간 동안 제대로 어학을 배울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없었고, 왠지 이탈리아행을 포기하게 될 것 같았다. 그는 3개월치 수강료를 한 번에 지불하고 바로 유학을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탈리아 현지 어학원 기초반에서도 제가 가장 초보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자국에서 1년 정도 어학을 배우고 온 터라 어느 정도 말을 하긴 했는데 저는 알파벳조차 몰랐으니까요. 사흘이 지나자, 어학원에서 저를 독방으로 보냈습니다. 그곳에 어머니 같은 푸근한 인상의 선생님이 한 분 들어오셨죠. 마치 갓난아기를 가르치듯 하나하나 발음하며 저에게 말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실제로 이승찬 총주방장은 능숙하게 이탈리아어를 구사한다. 마치 모국어를 사용하듯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호텔 근무를 위해 영어를 배웠지만, 영어를 사용하려면 한국어나 이탈리아어를 먼저 떠올린 뒤 영어로 바꿔 말하게 된다니, 얼마나 이탈리아어가 그의 삶에 깊이 적응되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단순히 학원에서의 성과가 그를 이렇게 만든 건 아니었다. 밀라노에는 신촌처럼 학생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 있는데, 그곳을 추천 받아 이사를 하게 됐다. 룸메이트는 남부 이탈리아인 두 명. 프란체스코와 마르코였다.

“프란체스코와 마르코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함께 했더니 순식간에 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이사 간 첫 날 프란체스코가 호의로 전해준 ‘프로슈토’였습니다. 환영의 인사였는데, 당시에 저는 전혀 알지 못했죠.”

그는 처음 받은 프로슈토를 단순히 얇게 썬 고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잘 보관해뒀다가 다음날 아침에 프라이팬에 구워먹었다. 짜고 이상한 맛이었다. 어찌 사람이 먹지 못할 음식을 나에게 주는 것인가? 무척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오로지 스파게티만 바라보고 도착한 이탈리아였다. 어학원의 다른 친구들과 방문한 레스토랑에서도 애피타이저와 메인의 구분도 하지 못했다. 그저 메뉴판 제일 상단에 있는 메뉴, 그것만 먹겠다고 선택을 했다. 아뿔싸! 웨이터가 가져온 그의 음식은 프란체스코가 줬던 맛없는 얇은 생고기에 멜론이었다. 어쩔 수 없이 생고기를 잘라 한 입 가져갔다.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굽는 것보다 훨씬 나은 풍미였다. 이번엔 함께 나온 멜론과 함께 입에 넣었다. 그의 인생을 대표할 수 있는 한 접시의 요리로 프로슈토 멜론이 나온 건 바로 이 순간이었다.

“제가 ‘스파게티’를 벗어나 이탈리아 요리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결정적인 순간이 바로 그때입니다. 프로슈토의 풍미에 멜론의 단 맛이 더해지니 멜론은 더욱 달아지고 프로슈토가 향기롭게 느껴지는 그 조화. 국내에서 경험하지 못한 문화적인 충격이었죠.”

일 년 정도 어학생활을 마치고 그는 밀라노에 있는 요리학교인 ICPA에 입교했다. 이 곳은 90%의 교수가 모두 오너셰프이고, 상위 코스에는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포진해 있을 만큼 쟁쟁한 곳이었다. 이탈리아인도 아니고 여러모로 부족한 그는 이 선생님들이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괜스레 일찍 등교하고 선생님과 조교를 도와 강의를 준비했다. 목표는 이탈리아 주방에 들어가는 것. 그래서 서빙 코
스 등을 제외하니 2년 코스를 1년여 만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유독 이승찬 총주방장을 예뻐했던 선생님의 추천으로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에서 근무하게 됐다. 6개월의 인턴생활, 그러나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1년 정도를 무급으로 일하면 후에 채용을 하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IMF 금융위기가 그의 좋은 기회를 무산시켰다. 열흘 정도 하릴없이 밀라노의 거리를 헤맸다. 스무 개 이상 레스토랑에 찾아가 일자리를 물었다. 문전박대는 부지기수, 전화번호를 남기란 곳도 있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는 나중에야 알았다. ‘꼬노센짜’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자면 인맥이라는 의미다. 이탈리아는 인맥이 없으면 일자리를 얻기 힘든 문화였던 것이다. 막막한 마음에 학교를 다시 찾았다.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을 박차고 나온 그에게 아직 더 배워야할 수준의 실력으로 어떻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겠느냐며 모두가 회의적이었다. 이때 오랜만에 학교를 방문한 이승찬 총주방장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

“파비오 자고 선생님은 저에게 정말 은인같은 분이십니다. 제가 저의 사정을 말하자 유쾌하게 웃으시고는 교수실로 들어가 메모지를 하나 들고 나오셨죠. 그곳에는 어떤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추천했으니 당장 이곳에 가서 면접을 보라고 했습니다.”

베끼아 필란다(Vecchia Filanda). 오랜 방직공장이란 의미의 이 레스토랑은 한국으로 치면, 서울근교 분당 정도에 위치했다. 밖에서 벨을 누르면 보타이를 맨 지배인이 문을 열어줬다. 막내 조리사를 뽑는다고 해서 왔다하니 문전박대를 했다. 의아한 마음에 파비오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니, 조만간 세라피노 카사고 총주방장이 나왔다.

“처음에 저를 보고 많이 놀라셨어요. 전화로는 이탈리아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파비오 선생님의 추천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동양인인 저를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이유를 알았지만 당시에 저는 억울했죠. 그래도 지인의 추천 때문에 저를 내치진 않았습니다. 3개월만 일을 해보고 그때까지 총주방장님과 저 서로 다른 일할 곳을 알아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세라피노 총주방장은 부총주방장에게 집까지 차로 바래다주라고 했다. 갑작스런 친절에 이승찬 총주방장은 놀랐다. 집 근처까지 가서 집에 들어가 창밖으로 손을 흔드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부총주방장이 떠났다.

“3개월 동안 죽을 각오로 일했습니다. 급여는 적었지만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요. 시간이 거의 다 지나 세라피노 총주방장님이 저를 불렀을 때 이제 끝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때 들었던 말은 의외였지요.”

총주방장은 그간 마음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그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몇 년 전 베키아 필란다에는 주방보조로 동남아시아인이 하나 있었다. 그가 레스토랑 기물을 훔쳐 달아나버린 탓에 큰 상처를 입었던 터라 동양에서 온 이승찬 총주방장을 채용하는데 주저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부총주방장은 세라피노 총주방장의 큰아들이었는데, 그가 집까지 바래다준 건 거주하는 곳을 파악하기 위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성실한 모습에 세라피노 총주방장의 마음이 열렸고 그는 계속 근무를 이어갈 수 있었다.

   
▲ Melone e Prosciutto

베키아 필란다에서의 일 년은 그에게 정말 즐거운 순간이었다. 다만 한국나이로 서른이 다 되어 간다는 불안감이 슬슬 찾아왔다. 그래서 일 년 동안의 경험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세라피노 총주방장에게 말을 전했다. 그러자 세라피노 총주방장은 그에게 무섭도록 화를 냈다.

“고작 일 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적어도 두 해 이상은 보내야 조리사로 인정할 수 있다며, 지금 나간다면 절대 ‘베키아 필란다’에서 일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셨죠.”

결국 이승찬 총주방장은 베키아 필란다에서 더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 이후로, 그는 세라피노 총주방장을 정말 아버지처럼 대하게 됐다. 가족 별장을 방문하고 기념일을 함께 했다.

“한 번은 생일 초대를 받았는데, 어색한 느낌에 방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전화가 불이 났죠. 내가 가지 않아 초대받은 40명 모두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급하게 찾아가자 그제야 파티가 시작됐습니다. ‘우리 막내아들이 왔다’라고 하면서요.”

이탈리아인에게 ‘패밀리아’는 피로 연결된 가족만을 뜻하지 않는다. 나의 친구와 가까운 지인들을 모두 패밀리라 부르며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해외 유학파 셰프 중에는 간혹 자신의 경력을 부풀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는 당당히 베키아 필란다의 막내였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에게 세라피노 까사고는 스승이자,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이승찬 총주방장이 생각하는 음식에 대한 철학과 스타일, 조리기술 모두 그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인 것이다.

모든 시간이 지나, 한국에 돌아가기로 결심했을 때 세라피노 총주방장은 그를 밀라노 중심의 낡은 호텔로 데려갔다. 한국에 가기 전에 이 호텔에서 한 번 더 경험을 쌓고 가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그 호텔은 4층 건물에 주방도 하나인데다 허름해보였다. 그 호텔은 바로 포시즌스 밀라노였다.

“세라피노 총주방장은 제가 미슐랭 1스타에서의 경력만으로는 한국에서 부족할지 모른다고 생각하신 겁니다. 평생 요리를 하신 분이기에 럭셔리 글로벌 체인인 포시즌스의 경력이 있다면 한국에서도 좀 더 인정받지 않을까 생각하고 저를 데려가신 거죠. 마지막까지 철부지 아들처럼 저는 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호텔 총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다보니 그때 세라피노 총주방장의 저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알게 되어 마음이 뭉클합니다.”

세라피노 총주방장의 걱정과는 달리, 다행히도 이승찬 총주방장은 한국에서 빠르게 성공해나갔다. 이탈리아 본토에서 배워온 실력으로 승승장구, 호텔업계로 스카우트가 됐다. 호텔업계에서 커리어를 진행하며 운도 따랐다. 파크 하얏트 서울이 오픈했을 때 함께한 이승찬 총주방장은 만나는 외국인 총주방장 모두가 이탈리아 인이었다. 그들은 이승찬 총주방장과의 편안한 대화와 척하면 척 알아들을 수 있는 요리 실력에 만족해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옮긴 럭셔리 브랜드 콘래드 서울에서 2015년 6월 정식 총주방장으로 선임될 수 있었다. 호텔업계에서 일한지 13년 만의 일이다.

“셰프를 꿈꾸는 많은 후배들에게 저는 ‘인내’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보낸 4년,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레스토랑을 전전하면 일하던 시간에도 저는 무척이나 초조했습니다. 그 고생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외국에서 보낸 시간과 돈이 헛되이 느껴질 때가 많을 것입니다. 무책임한 말이 될 거라는 것도 알지만 조금만 더 인내하십시오. 요리에 대한 꿈이 있다면, 그 꿈은 결국 이뤄질 것입니다.”

이승찬 총주방장은 호텔 근무의 장점으로 다양한 고급 식재료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최근 유학파가 많이 생기며 요리에 뜻이 있고 생각이 깊은 후배들이 많이 증가했지만 주방에서 자기 소리를 낼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인내가 많이 줄었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3년에서 4년 정도면 주임 직급을 달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주방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습니다. 주방의 선배들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다만, 자신이 배운 게 옳다고 주장하기 전에 기존 선배들의 방식에도 존중이 필요합니다. 당장 후배가 틀렸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조리법에는 정답이 없으니, 가급적이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조리법도 몇 번 경험한다면 셰프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발판이 될 거라 믿습니다.”

이승찬 총주방장은 요리에 뜻이 있다면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외국에 나가 칼 한 자루를 쥐고 직접 경험하는 걸 권한다. 단순히 요리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식습관과 문화를 터득해야지만 온전히 하나의 요리로 완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현지와 녹아들며 사람들을 만나고 끈끈한 정을 쌓으면, 가족처럼 맺어진 사슬로 평생 이 길을 가는데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베키아 필란다의 부총주방장이었던 다비드는 현재 밀라노에 있는 호텔의 총주방장으로 근무중입니다. 제가 총주방장이 됐다고 하자, ‘내 밑에 있던 녀석이 제법’이라고 한참을 놀렸습니다. 그가 웃으며 몇 번이나 놀릴 수 있게 앞으로 저는 호텔 총주방장의 길을 꾸준히 가고자 합니다.”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op Chef Summit for Young’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op Chef Summit for Young’은 28년 연속 가축 질병 제로, 농축산 분야 세계 최초로 유엔이 인증한 지구 온난화 방지 기후협약 실천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한 고품질의 프리미엄 돼지고기를 세계 45개국 특급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에 공급하고 있는 칠레 최대의 농축산 기업 ‘아그로수퍼’와 호텔 요리 트렌드의 공유는 물론 한국 식문화와 조리 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내 특급호텔 현직 총주방장 모임 ‘셰프테이블’이 후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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