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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가득 본질을 안고 트렌드의 강을 건너다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조형학 총주방장
최종인 기자  |  hotell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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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04  10: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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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소공동 일대 새로운 건물 꼭대기 층에 올라선 적이 있었다. 두 눈에 가득 역사 깊은 호텔들이 담겼다. 저마다의 호텔을 방문하고 뷰를 즐긴 적은 있어도, 이렇게 이들을 모두 한 번에 바라보기는 처음이었다. 그 중 유독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이 눈에 밟혔다. 현관 앞에 서거나 호텔리어를 만나면 크고 당당하게 느껴지던 호텔이 막상 멀리서 바라보니 보통의 규모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문득 스스로에게 의문이 생겼다. 지금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을 방문하면 무언가의 압도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답은 간단했다. 100년의 역사와 더불어, 호텔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한 호텔리어들 때문이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25년 넘게 근무한 조형학 총주방장 역시 그 이유 중 하나였다.

   
▲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조형학 총주방장

당당함이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다. 조형학 총주방장은 바위 같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하다. 그간 만나온 셰프들과 다르게, 요리의 길에 들어서는 과정 속에 우여곡절이 있지 않았다. 다른 셰프들이 여러 번 물과 불을 오가며 쇠붙이처럼 단련이 되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면 조형학 총주방장은 30여 년 가까이 요리를 하면서도 한결같이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모부의 영향으로 어려서 호텔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게 큰 영향을 준 건 아니었고……. 스무 살 때부터 나는 요리를 하게 될 거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남자처럼 학업과 군생활을 마치니 스물일곱 살. 그때부터 요리인생의 첫걸음이 시작됐지요.”

스물일곱 살. 지금이야 어리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그만큼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청춘이지만 당시 주방에서는 어린나이라고 볼 수 없었다. 열여덟, 열아홉 밑바닥부터 시작해 올라오는 것이 관행처럼 이뤄지는 시기였다. 그래서 힘들었던 점이 없었냐는 질문에 조형학 총주방장은 예상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언제 시작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시작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요리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면 괜찮습니다. 쉰 살이 되어 시작해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형학 총주방장은 앰배서더 호텔에서 3년여의 기간을 거쳐 1991년, 평생의 일터라 할 수 있는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 입사를 했다. 그가 이 호텔을 선택한 이유는, 국내 오랜 역사와 더불어 글로벌 체인 호텔로 업장마다 외국인 셰프를 뒀기 때문이다. 양식을 담당한 조형학 총주방장은 더욱이 현지 본토의 요리를 선보이는 외국인 셰프와의 만남이 절실했다. 근대화를 먼저 이룬 서양의 방식대로 좀 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을 체득하고 싶었던 것이다. 확실히, 당시 외국인 셰프들의 실력은 국내에서 쉽게 배울 수 없는 내용이었다. 노하우와 기술, 폭넓은 시야를 그들을 통해 접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대부분 요리를 크게 동서양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요리는 연관성이 있습니다. 물론 전문성의 차이가 있어 디테일에서 구분이 되겠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전체를 볼 수 있는 눈높이와 내공이 생겨납니다. 재료의 선정, 조리하는 방법과 다양성, 체계화 등 한식, 중식, 일식, 양식 가릴 것 없이 하나의 요리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조형학 총주방장이 처음 요리를 한 장소는 ‘카페로얄’이었다. 당시에 커피숍은 간단한 음식을 즐기는 고객이 많아 양식을 선보이기 좋은 장소였다. 커피와 함께 샌드위치, 파스타 등 서양식을 고객에게 제공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음식으로 조형학 총주방장은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꼽았다.

“점심시간은 그야말로 전쟁터였죠. 스테이크가 한 번에 수십 개 주문이 들어올 때가 많았으니까요. 각각의 스테이크 익힘 정도를 빠른 시간에 외우고 가니쉬와 소스를 컨트롤해 문제없이 마지막 주문까지 끝냈을 때 참 행복했습니다. 요리사로서의 자부심과 고객의 만족이 삶의 큰 원동력이었죠.”

그렇다면 반대로 힘들었던 시기는 없었을까? 조형학 총주방장은 요리를 시작한지 5년 정도 되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당시에는 주방에 서는 일에 대한 편견이 많아, 사회적 편견에 부딪힐 때가 고비였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요리사의 위상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부분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이미 여러 셰프들과 많은 외식업 관계자들이 이야기하고 있어서 한 마디 거드는 게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해요. 전문적으로 요리만 하는 부류와 엔터테이너로 두각을 나타내는 부류가 요리사 중에 있다고 말입니다. 요리가 쇼가 되면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 이면에 있는 어려움과 고행의 길은 아무리 언급을 해도 이해가 쉽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가 김연아 선수의 화려한 피겨스케이팅을 기억하지, 그녀의 울퉁불퉁한 발을 기억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셰프의 세계에도 그런 울퉁불퉁한 발이 있지만,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부분이지요.”

조형학 총주방장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본질’이다. 요리의 본질. 그것을 손에 쥐고 놓지 않았기 때문에 조형학 총주방장은 다양한 업장으로 이동을 해서도 당당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다. 한 분야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 ‘달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큰 생각을 가졌다면 각각의 많은 경험과 다양한 영업장에서 주방을 접했을 때 자연스레 지식이 쌓인다. 이는 갑작스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해결하는 능력으로 빛을 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호텔은 가장 훌륭한 직장이다. 다양한 국가의 고객을 만날 수 있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반응을 직접적으로 보고 들을 수 있다. 카페로얄에서 콜키친으로, 다시 연회 메인주방에서 나인스게이트그릴, R&D 메뉴 개발팀까지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던 그가 총주방장 자리에 오른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요리의 본질을 이해하는 게 요리사의 자격이라면, 요리사가 더 좋은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자부심, 두 번째는 고객, 세 번째는 트렌드입니다.”

2011년 총주방장으로 임명된 그가 직원들에게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이 바로 시장의 트렌드를 이해하라는 것이었다. 신문이면 신문, 잡지면 잡지. 개인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취합해 직접 피부로 느끼라고 했다. 본인 스스로도 새로 오픈하는 레스토랑, 바, 베이커리를 찾아다녔다. 먹고 마시는 분야면 뭐든지 경험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팀원들과 함께 나눴다. 그렇게 총주방장으로서 근무를 하며 ‘클래식과 모던의 융합’이라는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철학을 굳건히 만들어 갔다. 그가 트렌드를 강조하게 된 것은 2000년 중반에 들어서면서 요리만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 중점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이 바로 ‘인문학’이었다. 요리를 단순히 요리지식만으로 풀어내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시대가 민감하고 빠르게 변하는 만큼 주방도 대처해야만 했다. 고객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소통을 하기 위해 일상적인 지식의 저변이 넓어져야 함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그가 R&D 메뉴개발팀에 있을 당시, 사회의 흐름을 보니 핵가족을 넘어 이제는 1인 가족 시대가 태동을 하던 시기
였다. 집에서 요리를 안 하니 1인 포장음식의 유행이 시작된 것이다. 그 예상에 발맞춰 델리와 카페에 중점을 두고 테이크아웃 전문점에 심혈을 기울였다. 호텔과 로드숍, 백화점 등 계열사 관련한 업무를 담당했다.

“시대는 점점 빠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급류에 휩쓸려 무작정 변화를 추구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본질을 모르고 만들어지는 요리를 과연 요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트렌드는 요리의 저변을 넓히는 과정이지, 요리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시시대부터 불에다 고기를 구워먹던 역사가 계속 쌓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도 음식이 가지는 본질을 잊지 않습니다. 누적된 역사를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변화가 가능합니다.”

2014년 100주년을 맞이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는 과거 프렌치 레스토랑인 ‘팜코드’의 메뉴판을 발견, 이를 고증한 메뉴를 선보였다. 조형학 총주방장은 당시의 메뉴와 지금 다시 선보인 메뉴가 본질에서 변화가 없기 때문에 고증이 어렵지 않았다고 말한다. 메뉴의 플레이팅이 바뀌지만 그 본질은 아직까지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 살아있음을 강조했다.

“셰프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요리의 본질을 탐구하라는 것.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입니다.”

   
▲ Sea bream seared with variations of garlic and shrimps

요리의 본질을 강조하는 조형학 총주방장은 자신의 인생을 대표하는 요리로 생선을 선보였다. 살이 오른 감성돔과 가을이 제철인 대하가 어우러진, 멋진 요리였다. 생선요리는 생선의 종류에 따라 맛과 손질법, 껍질과 속살의 익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굉장히 까다로운 요리로 통한다. 생선요리의 깊이를 알기까지는 직접 많은 생선을 만져보지 않은 이상 불가능하다.

“생선요리는 확실히 어렵습니다. 요리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 고스란히 드러나죠. 그렇지만 이번 요리의 본질은 ‘제철’입니다. 본 계절에 나오는 가장 맛있는 식재료를 활용해 메인인 생선과의 밸런스를 추구했습니다. ‘계절의 밸런스’라고 할 수 있지요.”

갑자기, 이직이 활발한 요리업계에서 그가 한 곳에 오래토록 머무는 이유가 궁금했다. 다른 셰프들은 교수가 되거나, 오너 셰프로 활동을 하는데, 아직까지 호텔을 굳건히 지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조형학 총주방장은 대답했다.

“호텔에 근무하면서 아직 내가 모자라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단순한 겸손이 아닙니다. 정상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요리사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원칙도 없고, 실제 정상으로 가는 길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리의 본질을 꽉 쥐고, 트렌드의 풍파를 견디며 그 길을 걷고 있는 것뿐입니다. 과거에는 젊은 열정으로 힘차게 걸었다면 지금은 경험으로 힘든 길을 견디고 있습니다. 언젠가 시대의 변화가 너무 빨라,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날이 온다면 그때가 제가 이 길을 떠나는 순간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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