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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순간마다 마주친, 오믈렛 Omelette그랜드 앰배서더 서울 심창식 총주방장
최종인 기자  |  hotell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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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15  11: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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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프로그램에서는 연일 스타셰프들이 등장한다. 젊고 멋지고 자신감이 넘친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많은 ‘셰프지망생’들이 화려함에 이끌려 현실의 어려움을 깨닫지 못한다고. 맞다. 엄밀히 말하면 셰프(Chef)는 총주방장을 뜻한다. 일반적인 조리사는 쿡(Cook)이라고 부른다. 과거의 그들은 셰프가 되기까지 많은 시간을 주방에서 보내며 경험을 쌓아야만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친 국내 특급 호텔 총주방장들은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셰프의 유명세에 한걸음 떨어져서 업장을 책임지고 후배를 양성하는 특급호텔 총주방장의 인생과 단 하나의 요리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 시작은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의 심창식 총주방장이다. 처음이라 어떤 요리를 마주하게 될지 큰 기대를 가졌지만 실망이 앞섰다. 그가 가져온 접시엔 오믈렛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생각해보니, 오믈렛은 아침을 여는 가장 기본적인 계란요리가 아니던가. 더없이 시작에 어울리는 메뉴였다. 처음부터, 고수를 만났다.

   
▲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 심창식 총주방장

최근 셰프만큼이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방송인이 있다. 전직 농구선수였던 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다. 그런 그가 한 토크쇼에 나와 말했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고. 자기는 늘 절실함 속에 승부를 해왔다고. 그처럼 과격한 표현은 아니었지만 심창식 총주방장 역시 비슷한 의미의 말을 전했다.

“성공에는 두 가지 케이스가 있습니다. 미치도록 좋아하거나 아니면 죽을 만큼 절실해야 하죠. 사실 행복한 게 훨씬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절실하기라도 해야 합니다.”

전자였다면 무척 좋았겠지만 심창식 총주방장은 요리가 미치도록 좋아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좋아 방방 뛰어다니기에는 그의 어깨가 책임감으로 잔뜩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는 열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였다. 세 살 위의 형이 학업을 포기하고 그를 위해 등록금을 마련해줬다. 그렇게 중학교를 나왔지만 학업에 뜻을 가지기에는 현실이 만만치 않았다. 김포공항 근처 식당에 취직했다. 단순히 서빙을 할 줄 알았는데 주방장이 기술을 배워야 굶어죽지 않는다며 요리를 배우라 했다. 그 호통이 무서워 열일곱 살의 나이에 아침 여섯시 반부터 밤 열시까지의 주방생활을 시작했다. 일을 하다보니 자격증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이야 조리기능인자격증이 있지만, 당시에는 도지사가 발행하는 면허증이 있었다. 함께 일하는 선배 중에서도 면허증을 가진 사람이 얼마 없었다. 면허증이 있으면 급여가 많이 올랐다. 더 많은 급여에 욕심이 나 독학을 해서 면허증을 땄다. 칭찬을 받을 줄 알았는데 주방장에게 크게 혼이 났다. 어린놈이 건방지다는 말을 들었다. 급여마저 오르지 않았다. 열아홉 살의 심창식 총주방장은 더 큰 곳으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은 바로, 세종호텔이었다.

처음 지원은 주방보조였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가기를 희망했다. 경력이 3년 이상 되어야 입사지원이 가능했지만 선배들의 도움으로 지원을 할 수 있었다. 면접을 무난히 통과하고 실기시험을 봐야했다. 이때 나온 메뉴가 바로, ‘오믈렛’이었다. 다른 지원자들은 오믈렛 만드는 법을 모르는 눈치였다. 당시 서양요리가 익숙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김포공항의 식당에서 일했던 그는 오믈렛을 만들 줄 알았다. 그는 세션 파트장으로 발령이 났다.

“처음엔 덜컥 겁이 났어요. 나이는 어리지, 호텔의 메뉴는 영어로 되어 있어 도통 알 방법이 없지……. 하지만 기존에 3만 원도 못 받던 월급이 9만 원으로 3배나 인상되다보니, 가족을 위해서 그 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심창식 총주방장은 처음 얻게 된 호텔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공부를 시작했다. 비록 그 자리의 급여가 13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는 자리였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호텔에서 일하고 싶었다. 당시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외국서적 「프로페셔널 셰프THE PROFESSIONAL CHEF」를 독파했다. 어려운 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제과장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그렇게 간신히 자리를 지켜내게 되자, 어느새 심창식 총주방장은 어엿한 요리사로 성장해 있었다.

“그렇게 만족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또 하나의 목표가 마음 속에 생겼습니다. 바로 신라호텔이죠.”

신라호텔이 오픈할 즈음, 많은 요리사들이 그 곳을 꿈꿨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걸림돌이 있다면 고등학교 졸업장이었다. 업무 틈틈이 공부를 해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는 신라호텔이 프랑스어로 된 메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남몰래 프랑스어 공부도 시작했다. 3년 동안 공부를 하며 몇 번의 시험을 거쳤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3개월 계약으로 신라호텔에 일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다른 계약직 직원들과 달리 불어 메뉴를 이해하고 레시피 대로 조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다. 모두가 어리둥절해 했다. 덕분에 선배들의 도움으로 입사시험을 볼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때의 실기시험 메뉴도 오믈렛이었다.

“계란은 온도에 민감에서 불조절이 관건입니다. 단순해보이지만 재료와 불의 관계에 대해 얼마나 익숙한 지 보기에는 오믈렛만한 것이 없죠. 여기에 함께 곁들이는 가니쉬는 칼을 다루는 숙련도도 볼 수 있어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총주방장이 되고 보니, 아! 그래서였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 Foie Gras Omelette on a bed of Asparagus with Potato gnocchi & grilled Artichoke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은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의 인생이 그러했다. 그에게 찾아온 기회는 바로 ‘오믈렛’이었다. 신라호텔에 재직당시 외국인 셰프에게 유독 적극적으로 질문했던 심창식 총주방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하나?’는 질문을 가장 싫어한다. ‘내가 이렇게 공부를 해봤는데, 이게 맞는 건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외국인 셰프 대부분은 ‘예스!’라고 답을 했다. 나의 해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되고 외국인 셰프는 점점 더 그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중 롤랜드 히니는 그에게 세계대회 출전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신라호텔 팀 멤버가 된 그는 한 달의 준비기간을 거쳐 찬요리와 더운요리 금메달, 종합요리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결과가 나오니 더 좋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호텔에서 서상호 팀장과 나, 제과 쪽 두 명을 프랑스로 연수를 보내주었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연수도 좋은 경험이었지만 아쉬운 기억도 남았다. 당시 호텔에 생긴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컸던 탓이다. 호텔 내 이탈리아어 강좌가 생겼을 때 가장 열심히 들었던 게 바로 심창식 총주방장이었다. 열심히 배웠는데 3개월만에 프랑스를 가게 됐으니 아쉬울 만도 하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자 거짓말처럼 이탈리아어 강좌가 없어진 상태였다. 선후배들이 우스갯소리로 ‘네가 나오지 않자 강사가 재미가 없어져서 폐강됐다’라는 말을 건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신라호텔에 근무하는 10년 동안 그의 이미지는 ‘대학생’이었다. 오후 2시 출근인 날에도 7시에 가서 강좌를 듣고 도서관에서 숙제를 했다. 김포에서 호텔까지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어를 공부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10년을 묵묵히 노력했다.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었다. 그가 하는 일에 대한 지식을 늘리는데 가장 중요한 무기였기 때문이다.

“외국인과 요리 관련해서 같이 얘길 하면 내가 영어를 엄청 잘하는 줄 아는데 실제로 잘 하는 편이 아닙니다. 70%는 이해하고, 전하고 싶은 말을 드문드문하는 정도죠. 단지 사용하는 어휘가 굉장히 전문적이라서 일상적인 영어를 하시는 분들은 많이 놀랍니다. 불어도 그렇고 이태리어도 그렇고 그냥 내가 가서 일할 수 있는 정도로만 합니다. 일을 하려면 이해가 필요하니까요.”

1997년 IMF 당시 호텔업계를 떠났던 심창식 총주방장은 2년 뒤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을 통해 호텔업계로 돌아왔다. 2005년에는 호텔의 총주방장이 됐다. 총주방장의 업무는 그에게 또 다른 도전이었다.

“총주방장은 요리만 잘해서 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요리 외에도 상품기획, 구상을 담당하고 수익과 단골고객의 취향도 파악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방시설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와 직원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리더십이 중요합니다.”

심창식 총주방장이 강조하는 것은 ‘가장 좋은 음식을 가장 좋은 상태에서 맛 볼 수 있게’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요리뿐만 아니라 주방과 홀이 하나가 됐을 때 가능한 서비스다. 직원들이 자발적인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자존감이 높아야 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고 인격적으로 망가뜨리지 말자’고 강조한다.

“요즘이야 스타셰프들이 등장하며 조리사의 위상이 다소 높아졌지만 과거에는 천대를 받는 직업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업무환경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죠. 어린 후배들을 보면 가르쳐준 것은 빨리 받아들이는데 스스로 메뉴를 짜고 다음단계로 나아가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바꾸는 게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가르쳐 주는 것을 빠르게 습득하는 건 성실함과 기본적으로 착한 심성임을 알 수 있다. 심창식 총주방장은 외국인 총주방장 밑에서 무조건 ‘예스!’라고 대답하는 관습부터 바꿨다. 외국어를 오래 공부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었다. 여기는 한국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외국인 총주방장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얼떨결에라도 대답을 하지 말라고 엄하게 다스렸다.

여기에 총주방장으로 부임하고부터 한 달에 한 번씩 후배들에게 ‘원 디쉬’를 내게 한다. 유명 레스토랑의 카피메뉴라도 괜찮다. 레시피를 작성하고 요리를 하고 원가도 뽑는 일련의 과정을 진행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결선대회를 통해 우승자를 뽑는다. 우승자에게는 해외 연수를 지원한다.

“면접을 볼 때 이 질문을 꼭 합니다. ‘얼마나 고민하고 이 자리에 온 건가?’라고. 개인적으로 성공을 다룬 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타인의 과정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마음의 과정입니다. 그 과정이 뚜렷하려면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해야합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해서 그 길로 들어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심창식 총주방장이 꿈꾸는 미래는 어떤 것일까? 그는 주저없이 ‘정직한 요리’를 하고 싶다고 한다. 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좋은 음식이라 생각하는 그는 최근 김포에 200여 평 정도의 밭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토마토, 상추, 허브 등 익숙하게 다뤘던 식재료의 성장을 지켜보며 새로운 깨달음이 많다고 한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작물들을 보며 힐링의 시간을 가진다는 심창식 총주방장은 또한 함께 일을 하며 성장해가는 후배 조리사들의 모습 또한 자신에게 힐링이 되는 중요한 부분임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지금은 당장 기회가 보이지 않아도, 지금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언젠가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젊은 조리사들이 스스로를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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