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Garden)이나 파크(Park)는 호텔 이름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단어다. 자연과 친해지고 싶은 인간의 본능 탓이다.(서울의 특1급 호텔 중 마포의 베스트웨스턴 서울 가든과 삼성동 파크 하얏트 서울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정작 이들 호텔에는 가든이나 파크가 없다.) 집 안에 있는 뜰이나 꽃밭을 우리는 ‘정원’이라 부른다. 아파트 생활이 일반화된 한국인에게 정원보다 가까운 단어는 공원이다. 공원에 가도 잘 가꿔진 산책로가 있고 푸른 잎사귀 만발한 나무들이 가득하지만 비둘기, 노숙자와 함께 공간을 사용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름다운 꽃과 함께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고 싶은 로망이 있다면 호텔 정원은 훌륭한 대안이다.

‘가든’은 집안의 작은 뜰이나 꽃밭이고 ‘파크’는 저택에 딸린 더 큰 개념의 정원을 뜻한다. 정원은 크게 나눠 동양식과 서양식으로 나뉜다. 서양식 정원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이나 비엔나 쉔부른 궁전을 생각하면 쉽다. 기하학적이고 컬러풀하며 대칭을 중시한다. 동양의 정원 가꾸기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자연과 인간의 합일, 교감을 중시하는데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가 또 다르다. 중국은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하며 풍수지리, 숫자 등 특유의 정신세계를 정원에도 고스란히 반영한다. 정원 설계에 들어가는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 중국 역시 대칭을 좋아한다. 일본의 정원은 아기자기하다. 이름난 절경을 정원에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도 즐겨 쓴다. 사계절의 변화가 극명하게 보이는 설계를 하고 연못 등 물을 끌어들인 정원을 즐겨 만든다.
한국식 정원은 지형과 자연물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꾸밈을 최소화 하며 정원에서 멀리 보이는 들판과 산자락, 강물을 모두 정원의 개념에 끌어들인다. 인간의 손길이 깃든 조각물 보다는 자연석을 선호하는 특징도 있다. 창덕궁 후원, 담양 소쇄원 등이 우리나라 정원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명소다.

▲ 서울신라호텔_ 영빈관 앞 배롱나무꽃

호텔의 정원도 모두 제각각 다르다. 호텔을 세운 인물의 성향, 문화적 배경과 시대상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구경하는 맛이 쏠쏠하다. 우리나라 호텔 정원의 백미는 역시 신라호텔이다. 현관 정면에 심어진 금강송은 신라호텔이 개관하기 전 국빈을 모시던 영빈관은 장충단 공원 중턱 옛 박문사지(이토오 히로부미의 사당) 3만3250평에 연인원 8만여 명, 2억2418만 원을 들여 8년간 공사를 계속해 1967년 2월 27일 문을 열었다. 건물 주변으로 포진한 팔각정 2개와 분수대 2개를 중심으로 홍단풍, 백목련 등 500여 그루의 고급 정원수와 5000그루의 일반수를 심었다. 분수대 가운데에는 서울대 미술학과 김세중 교수가 조각한 ‘화랑무사’라는 조각품이 있었고 청사초롱 50여 개가 걸렸다. 첫 투숙객인 뤼프케 서독 대통령 부부와 수행원들은 영빈관의 아름다운 정원에 홀딱 빠져 ‘분더바’를 연발했다.
그로부터 반백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영빈관을 감싸고 있는 정원은 여전히 아름답다. 건물 뒤편 잔디밭은 예나 지금이나 야외 웨딩을 생각하는 커플이 0순위로 떠올리는 명소다. 아늑하지만 무척 넓어 2000년대 초반 북한 농구대표팀이 투숙했을 때 간단한 훈련 장소로 사용하며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영빈관 정면에 심어진 배롱나무와 목단은 절집이나 종가집 고택을 장식하는 나무다. 모두 부귀와 풍요를 상징한다. 건물 왼편으로 돌아가면 성벽처럼 영빈관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바위가 보인다. 바위 꼭대기에는 ‘민족중흥’이라고 음각으로 파놓은 글귀가 있는데 누구 작품인지는 알 길이 없다.(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라는 설이 있는데 확인되지 않는다.) 조금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올라가면 팔각정이다. 오른쪽 오솔길은 서울 성곽을 따라 이어지는 조각공원 산책로다.
1995년 호텔신라는 이 부근에 다람쥐 50마리를 풀어줬다고 하는데 지금은 모습을 보기 어렵다. 장충동 공원 쪽 더 파크뷰 방향으로는 작은 폭포가 있는 정원이 있다. 호텔측은 이곳에서 텃밭을 가꿔 제공하기도 했다.
다시 천천히 조각공원을 따라 호텔 전체를 둘러보면 원래 있던 지형을 최대한 보존하고 있는 것은 신라호텔 정원의 가장 큰 특징임을 체감하게 된다. 1978년 개관한 신라호텔 본관 건물은 일본의 다이세이 건설과 다께나까 공무점이 합작해 설계했지만 건물의 외관을 황토색 타일로 붙이는 등 주변 환경과 조화를 잊지 않았다. 정원의 개념을 남산까지 확장했을 때 조화를 이루려 하는 한국식 정원설계의 특성도 읽을 수 있다. 호텔 로비 맞은편에 식재된 금강송과 호텔 건물, 남산 서울N타워가 시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만드는 미적 감각은 예사로운 수준이 아니다.
신라호텔 창업자 故 이병철 회장을 비롯한 삼성 오너가의 조경에 대한 높은 기대치도 신라호텔의 정원을 더욱 특별하게 해주는 요인이다. 에버랜드 구내에 있는 전통정원 ‘희원’에 가보면 삼성家에서 정원에 쏟는 관심을 엿볼 수 있다.

▲ 그랜드 하얏트 서울_ 겹벚꽃

남산 자락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품 정원은 용산구 한남동 747번지 일대, 그랜드 하얏트 서울이다. 호텔 진입로에 도열해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들은 남산과 시각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나무들의 수령은 대략 40세 이상이다. 2만2000여 평의 넓은 대지 곳곳에 심어진 나무들의 수종은 무척 다양한데 벚꽃이 만개하는 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의견과 낙엽이 후두둑 떨어지는 늦가을 최고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제이제이 마호니스 주차장 주변에는 서울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겹벚꽃 여러 그루가 있는데 일반적인 왕벚꽃보다 개화시기가 늦어 화려한 봄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역할을 해준다. 테니스 코트로 내려가는 방향으로는 남산의 상징과 같은 ‘철갑을 두른듯’ 탄탄한 몸집의 소나무가 볼거리다. 거대한 정원 곳곳에서 가끔 보이는 석탑들은 초창기 오너인 일본인의 취향이 배어 있다. 화를 막고 복을 비는 뜻이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식물 사랑은 거대한 규모의 온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랜드 볼륨 주차장 뒤편 직원용 매점 위층에 숨겨진 온실은 호텔 내부를 장식하던 다양한 식물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다.

▲ 워커힐 산책로

산자락을 끼고 있는 호텔 정원 중 마지막 하나를 꼽자면 워커힐이 빠질 수 없다. 이곳의 자랑은 정원보다는 숲이다. ‘시크릿 가든’으로 불리우는 잘 3만 평의 잘 가꿔진 숲과 산책로는 ‘도심속 리조트’를 표방하는 워커힐의 강력한 전략 자산이다.
소나무, 잣나무, 은행나무, 목련, 왕벚나무, 단풍나무, 오리나무, 리기다소나무, 가이즈카향 나무, 편백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은 호텔의 역사와 함께 불혹을 훌쩍 넘긴 거목으로 자라났다.
이 숲에는1960~70년대 워너비 신혼여행지였던 워커힐에서 첫날밤을 보냈던 신혼부부들의 식수 동산이 존재했다. 산허리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상에, 잣나무 숲으로 이뤄진 작은 삼림욕장이 있었는데 70년대 초반 신혼부부 식수동산으로 조성된 숲이다.
울창한 숲에 비해 아기자기한 꽃밭은 찾기 어려운 편이다. 애스톤 하우스의 탁 트인 잔디밭 정도가 이 호텔에서 대표적인 정원이라 할 수 있다. 다소 단조롭지만 한강자락을 내려다보는 전경과 어우러지면 완벽한 풍광을 만들어낸다.

▲ 워커힐 신혼부부 기념 식수 동산

평지에 있는 호텔들은 산자락보다는 아늑한 정원을 만들기에 제약이 따른다. 롯데호텔 서울 뒤편에는 인공폭포와 분수대를 갖춘 제법 넓은 정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면세점 주차장으로 쓰인다. 지하철역과 지상으로 연결되는 녹지공간도 여름이면 식음업장으로 변신해 사실상 휴식을 위한 녹지공간은 없다고 봐야 한다. 토지의 가장 비효율적인 사용법인 정원 가꾸기를 포기한 결과 투숙객이 간단한 산책을 즐길 공간은 사라져 버렸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문화재로 지정된 환구단 때문에 다행히 녹지를 보존했다. 광무원년(1897년) 10월 고종이 여기서 천에게 제사를 올리고 황제에 올랐다. 환구단 부근에는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팔각정 사당 황궁우와 고종의 성덕을 찬양하는 글을 새긴 석고단을 기념물로 세웠다. 1913년 일제가 헐고 조선호텔을 세웠으며 현재 황궁우와 석고, 석조 대문만 남아 있다.

▲ 서울 웨스틴조선호텔_ 정원 ‘소공정’ 식재도

호텔측은 환구단을 중심으로 산딸나무, 병아리꽃나무, 제주 참꽃나무, 꽃댕강 나무, 황매화, 철쭉 등을 계획적으로 식재해 ‘소공정’이라는 단아한 매력의 정원을 만들었다. 또한, 이 호텔은 최근 뷔페 레스토랑 아리아를 개보수하며 제주도산 팽나무 고목을 옮겨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팽나무의 꽃말은 고귀함이다.
더 플라자 호텔은 차도였던 서울 광장에 잔디밭이 생기며 없었던 앞마당이 생겼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바로 연결되는 덕수궁은 이 호텔 투숙객에게 산책코스로 추천된다.
10월 개관을 앞두고 있는 포시즌스 호텔 서울도 건물 한 켠에 정원을 만드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공간에서 ‘사계절’을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해진다.

▲ 메이필드 호텔_ 벨타워가든

꽃놀이 목적의 정원이라면 메이필드 호텔이 독보적이다. 메이필드 호텔은 약 10만㎡ 부지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풍광을 느낄 수 있는 넓은 정원과 산책로가 자랑이다. 유러피안 스타일의 종탑을 배경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벨타워가든(Bell tower Garden)’과 웅장한 느낌의 ‘아트리움(Atrium)’은 각종 드라마, 영화, CF 촬영지로 유명하다. 40여 년간 정성 들여 가꾸어 온 다양한 수목과 70여 종의 야생화, 장미, 국화 등 다양한 꽃들이 저마다의 향기를 뿜어낸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 위치한 호텔들은 더 넓은 정원을 가꾸고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특급호텔 입지로 적합한 주요 도시 중심지의 땅값도 만만치 않게 비싸기 때문이다. ‘리조트’라는 성격을 전면에 내세우는 제주도의 호텔 정도가 일부러 가볼 만 한 정원을 갖고 있다. 제주 신라호텔의 숨비정원은 국내 어떤 정원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독보적인 존재다. 약 2만여 평의 대지에 이 정원은 제주신라호텔에 투숙하지 않더라도 숨비정원을 산책하기 위해 방문하는 관광객이 많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야외 수영장을 둘러싸고 있는 워싱턴 야자수와 카나리아 야자수는 아열대풍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40여 종의 정원수와 23종의 화목류, 다년초 등 80여 종 10만4000그루의 나무와 화초가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낸다. 숨비정원은 11명의 전문 조경 관리자로부터 최상의 관리를 받는 귀한 몸이다.

▲ 제주신라호텔_ 숨비정원 산책로

봄이 되면 제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노란 유채꽃이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루며 숨비정원을 노랗게 물들인다. 봄에서 여름 사이에 꽃이 피는 용설란은 100년에 한번 개화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만개한 꽃을 보기가 어려운데 지난 2008년 제주신라호텔 숨비정원의 용설란 6그루가 동시에 꽃을 피워내 당시 호텔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줬다.
허니문 로드는 1990년 개관 당시 신혼여행을 위해 방문한 허니무너들이 직접 동백꽃 나무 묘목을 심어 만들어진 길이다. 부부들이 첫 출발의 약속을 고이 간직하는 기념의 의미로 제주신라호텔에서 선물한 동백꽃 나무 묘목을 커플의 이름과 투숙 날짜가 적힌 팻말과 함께 직접 심은 것.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본인들이 심은 동백나무를 찾아 기념하는 중년의 커플들이 있다. 가을이 되면 은빛 억새와 코스모스가 가득한 바람의 정원이 된다. 숨비낭길에 들어서면 이곳이 호텔 안이라고 믿을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송림숲을 만날 수 있다. 1㎞의 오솔길이 산책로로 마련되어 있어 피톤치드 샤워를 하며 산책을 즐길 수 있고, 바로 옆에 어린이들을 동화속 오두막 키즈 캐빈이 자리하고 있어 어린이 자연 체험장으로 이용된다. 숨비정원의 식물들은 어두운 밤에도 특별한 선물을 준다. 중문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걷다보면 온갖 식물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꽃향기가 온 몸을 휘감는다.

숨비정원이 히트상품으로 떠오르자 롯데호텔 제주 역시 해온 정원을 만드는 등 가드닝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추세다. 최근에는 켄싱턴 제주 호텔의 모을 정원도 눈길을 끈다. 오름을 형상화한 독특한 모습의 정원 뒤편은 이국적인 느낌 가득한 야자수 산책로가 이어진다. 여름이면 주변에 심어놓은 수국들이 만개하며 분위기를 더한다.
_ 전경우 스포츠월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