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스러움’을 사진으로 찍어오라는 대학시절 과제물이 요즘도 종종 생각이 난다.(필자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무척 어려웠던 기억인데 최근 그 이유를 호텔에서 발견했다. ‘고급스럽다’는 개념 자체가 시각적인 부분만 내세워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급스러운 종이’라는 단어만 봐도 그렇다. 시각적인 질감과 만졌을 때 느껴지는 질감, 무게 등이 어우러져야 한 장의 종이는 ‘고급지다’는 평가를 얻는다. ‘공간’을 ‘럭셔리’라는 개념으로 포장하는데도 다양한 요소가 버무려져야 결과물이 나온다. 눈으로 보이는 부분은 기본이다. 여기에 후각과 촉각, 그리고 귀로 듣는 청각을 고려해야 ‘럭셔리한 공간’이라는 개념이 성립된다.

시각적 만족은 감성적인 ‘느낌’보다는 이성적인 ‘분석’, 그리고 경험과 학습의 결과물 등이 더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후각’이나 ‘촉각’, 그리고 ‘청각’은 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마음을 뒤흔든다.

이러한 부분을 가장 먼저 간파한 것은 자동차 업계다. 엔진의 소리, 진동, 주행 중 느껴지는 차량의 움직임, 시트의 질감, 내장재의 촉감, 도어를 열고 닫는 소리와 감각 등을 조합해 이른바 ‘감성품질’이라는 개념을 일찌감치 도입해 모든 세그먼트에 적용하고 있다. ‘감성품질’을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요소 중 ‘소리’에 집중한 것은 일본 도요타의 럭셔리 브랜드 렉서스다. 렉서스는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 럭셔리 3사와 미국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도서관보다 조용한 차’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해 막대한 개발비용을 쏟아부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브랜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호텔에서도 ‘소리’는 중요한 개념이다. 회전문을 통해 로비에 진입했을 때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라이브 연주는 외부세계와 호텔의 공간을 나누는 마법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로비의 라이브 공연은 특1급 호텔과 그 아래 호텔을 나누는 보이지 않는 기준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최근 국내 호텔에서 ‘라이브’의 힘을 월스트리트 저널의 Andrea Petersen은 ‘How Luxury Hotels Lure You With Music’이라는 제목의 최근 기사에서 럭셔리 호텔이 음악을 다루는 방법을 소개한다. 해당 기사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유럽 호텔 앤 리조트 브랜드인 ‘로코 포르테 호텔’은 18개월 전까지만 해도 음악에 관한 특별한 방침이나 전략이 없었지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DJ 출신 영화·이벤트·유명 레스토랑 음악감독 마이클 애덤을 고용했다. 그는 여러 호텔들을 돌며 시장조사를 한 끝에 재즈를 기반으로 한 “로코 포르테만의 사운드”를 창조했다. 차 문화가 발달한 영국에서는 클래식에, 독일에서는 테크노에 비중을 두는 등 나라에 따라 음악적 색채를 달리하는 융통성도 발휘한다. 플레이리스트의 30%는 매주 업데이트된다. 영국 업체인 ‘뮤직스타일링’ 소속 음악 컨설턴트 헨리 굴드는 분당 비트를 활용해 공간의 에너지를 조절한다. “숫자가 올라갈수록 음악이 빨라진다.” 음악 큐레이팅 업체들은 보통 시간대별로 다른 플레이리스트를 디자인한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아침과 점심, 저녁 식사시간에 나오는 음악이 종류와 템포 면에서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 켄싱턴 제주_ 아이다 듀오

최근 국내 호텔에서 ‘라이브’의 힘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곳은 켄싱턴 제주 호텔이 손꼽힌다. 건물의 중심을 비워 커다란 공간을 확보한 이 호텔은 가장 아래층 아뜨리움 라운지 앤 바에 이탈리안 ‘아이다 듀오’를 배치해 호텔 전체를 감미로운 음악으로 포장한다. 미국, 독일, 프랑스, 호주 등에서 오케스트라 협연과 단독 공연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이탈리아 출신 듀오 피아노 앤 테너 스테파노(Stefano Vagnini)와 소프라노 지오르지아(Giorgia Ragni)는 클래식뿐만 아니라 팝,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레퍼토리를 쉴 새 없이 쏟아낸다. 오픈 이후부터 지금까지 연주를 계속해온 이 듀오의 존재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호스피털리티의 일부가 됐다. 이들은 즉흥적으로 발휘하는 관객과의 호흡을 통해 여행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다.

음악이 풍성하게 들리려면 위와 아래가 연결된 형태의 로비가 유리하다. JW 메리어트 서울은 2층에 위치한 익스체인지 바에서 진행했던 라이브 연주를 7월부터는 로비와 2층을 연결하는 중간 계단에서 진행하고 있다. 보통 피아노 앤 첼로 혹은 피아노 앤 바이올린으로 팀이 구성되며, 주중에는 밝은 분위기의 클래식, 주말에는 아이들도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영화 음악을 주로 연주한다. 연주 장소가 바뀐 이후 로비 라운지에서 지인들과 티를 마시거나, 2층 레스토랑을 이용했던 손님들의 만족도는 크게 높아졌다.

‘물이 흐르는 소리’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데 일조한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공간 구석 구석에 분수대를 만들던 시절도 있었다. 호텔 정원에 만들어 놓은 인공폭포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클래식한 인테리어가 특징인 임피리얼 팰리스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대형 분수대를 작은 공연장으로 활용한다. 일요일을 제외한 저녁마다 팝페라, 팝페라 앤 테너, 재즈, 피아노 공연이 라이브로 진행된다. 뮤지션들이 선보이는 음악의 퀄리티는 바로 옆에 위치한 로비라운지 델마르의 매출과 직결된다.

호텔산업이 브랜드화 되면서 각 체인들은 저마다 차별화된 ‘소리’에 대한 스탠더드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BGM’이라 부르는 기본적인 사운드를 기본으로 각 공각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전략까지 ‘소리’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곳은 스타우드의 W 호텔이다. 이 호텔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한다는 브랜드의 콘셉트를 만들며 패션, 디자인, 그리고 뮤직을 중심에 뒀다. 전 세계 W 호텔의 리빙룸(로비)과 우바에서는 같은 시간 같은 음악이 틀어지도록 시스템화 되어있으며, W 호텔 소속의 4명의 뮤직 디렉터들에 의해 음악이 프로그래밍된다. 이들은 매 시즌, 가장 최신의 음악 트렌드와 시즌의 특성 그리고 각 시간대별(오전, 오후, 저녁, 밤 등) W를 찾는 고객의 특성과 그들의 니즈를 반영하여 뮤지션과 음악을 선정하거나 본인들이 직접 음악을 믹싱하기도 한다.(W 호텔의 뮤직 디렉터 들은 유명 DJ 또는 프로듀서로 구성되어 있다.) W 서울 워커힐의 AWAY SPA(스파), FIT(피트니스 센터), WET(실내수영장) 등에서 나오는 음악은 W 서울 워커힐의 뮤직 큐레이터 DJ 지오 반호우트에 의해 큐레이팅된 음악이 사용되고 있다.

▲ W 서울 워커힐_ 우바

소프트웨어만큼 중요한 것이 하드웨어다. W 서울 워커힐은 W 호텔 글로벌 브랜드 스탠더드에 맞춰, 기존 스탠더드룸에 비치된 BOSE 스피커를 ‘누드오디오(NUDE AUDIO)’사의 ‘스튜디오 5(STUDIO 5)’ 스피커로 대대적으로 교체할 계획이다. ‘스튜디오 5’는 3인치 서브 우퍼와 두개의 네오디뮴 드라이브, 2.1채널을 사용해 한 사운드 시스템을 제공하며, 아이폰뿐만 아니라 듀얼 블루투스를 위한 라이트닝 독을 함께 갖췄다.

롯데호텔 서울 본관 로비 중앙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는 독일제 명품 벡슈타인(Bechstein)이다. 이 피아노는 스타인웨이(Steinway & Sons co.), 뵈젠도르퍼(Bösendorfer)와 함께 클래식 연주자들에게 ‘세계 3대 피아노’라고 인정받는다. 최소 3000만 원부터 시작하는 이 피아노는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진정한 명품으로 비싼 모델은 1억 원을 훌쩍 넘긴다.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객실은 품격이 남다르다. 악기 연주는 유럽에서 귀족들이 갖춰야 하는 소양 중 하나였다. 때문에 스위트룸에 피아노를 배치하는 것은 럭셔리 호텔업계의 오래된 관습 중 하나로 이어져 왔다. 피아노가 있는 객실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은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이 손꼽힌다.
 

▲ 파크 하얏트 서울_ 더 라운지

호텔의 손님들이 젊은 층으로 이동하며 가장 두드러진 음악의 형태는 DJ퍼포먼스다. 파크 하얏트 서울 24층의 ‘더 라운지(The Lounge)’는 차분하고 단아한 분위기가 떠오르는 장소지만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이면 클럽 분위기로 바뀐다. 유럽 전역은 물론 아시아에까지 라운지·일렉트로닉 음악 열풍을 주도한 프랑스의 호텔 바 ‘코스테(Costes)’를 오마주로 세련되고 독창적인 믹싱으로 유명한 국내 실력파 디제이 ‘산도(Sando)’와 ‘나나(Nana)’를 영입해 들려주는 제대로 된 디제잉(DJing) 믹싱은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인피니티 풀의 풍경과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_ 전경우 스포츠월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