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랜드 하얏트 서울

별이 아니고 꽃이다. 호텔의 등급 이야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의식에 빠지지 않는 요소가 꽃이다. 가장 고귀한 존재라서 그렇다.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 실내를 싱싱한 생화로 장식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상류층만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이다. ‘럭셔리’는 효율을 따지지 않는다. 콧대 높은 호텔일수록 꽃은 품격의 상징, 즉 자존심이다.

▲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의 매튜 쿠퍼(Matthew Cooper)총지배인은 호텔 내부에 사용되는 꽃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직접 챙긴다. 그는 “꽃은 고급스러움을 표현해주는 요소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서울에 부임했을 때, 호텔 내에 생동감을 보여줄 수 있는 칼라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새롭게 선보이게 되었다. 꽃 장식으로 우리 호텔 인테리어의 분위기를 녹아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해당하는 계절과 잘 어울리는 꽃을 사용해야 하며, 고급스러움을 줘야 한다. 절화와 화분을 믹스함으로 더욱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하고, 꽃과 잘 어울릴 수 있는 그래픽적인 요소들을 함께 사용할 줄 안다면 그것도 하나의 팁이다”라고 꽃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실제로 그가 부임한 이후 이 호텔은 로비에 들어선 순간 느껴지는 분위기가 훨씬 고급스러워졌다.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은 봄꽃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벚꽃에 이어 델피늄이 등장하고, 바로 다음 주는 오하이오블루로 이어지는 변화를 추구한다. JW 메리어트는 글로벌 본사에서 제인 패커(Jane Packe)의 컨설팅을 받고 있다.

▲ 콘래드 서울

콘래드 서울의 로비 플라워는 동양적인 느낌이 강하다. 대나무, 벚꽃 등 한국적인 소재와 콘래드의 아이콘인 호접란(오키드)을 즐겨 사용한다. 쭉쭉 뻗은 느낌을 주는 식물들이라 천장이 높은 이 호텔의 공간과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듣는다. “디자인은 간결하게 해서 메인 주제가 되는 꽃의 의미와 자연의 힘을 강조하는데 중점을 둔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파크하얏트 서울의 미니멀한 디자인의 꽃장식도 팬이 많다. 호텔의 꽃장식은 외부 업체인 ‘디자인 알레(Design Allee)’가 담당한다. 공간마다 다르지만 로비는 1주일 정도마다 식물이 바뀐다. 호텔 관계자는 “호텔의 공간을 구성하는 시그니처 요소들이 나무, 돌, 유리인데, 이 자연적인 분위기를 최대한 해치지 않고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도록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고급스러운 꽃 장식을 호텔 전체적으로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로비에 크고 화려한 플라워 데코레이션을 배치하는 대신 작고 심플하게 포인트를 주는 방법으로 호텔의 공간이 주는 느낌을 유지하는 전략이다. 3~4가지의 다른 종류이지만 비슷한 느낌과 특징이 있는 것들로 적절히 선별하는 것이 노하우다. 글로리오사, 아테누아타, 호접난, 카라 등을 즐겨 쓰는데 이 식물들은 가지나 줄기가 길게 뻗어 있어서 너무 과하거나 단조롭지 않으면서 우아한 느낌을 준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도 꽃이라면 양보하지 않는다. 로비, 복도, 레스토랑 등에 비용을 아끼지 않고 싱싱한 생화를 사용한다. 로비에 들어선 순간 손님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계절감을 확 느끼게 해주는 싱싱한 꽃이다. 이 호텔 플라워샵 관계자는 “로비의 플라워 장식 디자인과 똑같이 해달라고 주문하는 손님도 간혹 있다”라고 귀띔해줬다. 이 호텔은 사시사철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온실까지 갖추고 있을 정도로 식물에 대한 애정이 깊다.

▲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토종 호텔들 중 가장 먼저 격이 다른 꽃을 선보인 곳은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이다. 지난2002년 영국 브랜드인 제인 패커가 조선호텔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의 꽃 문화는 일본풍 꽃꽂이에서 유러피언 스타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어 신라호텔이 2005년 ‘폴라 프라이켓’을 선보였고, 소호앤노호와 헬레나 등의 브랜드 꽃집이 강남지역에 등장하며 ‘꽃집언니’는 ‘플로리스트’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얻게 됐다. 조선호텔은 2008년 ‘격물공부’(사물의 이치를 깨우쳐 익힌다는 뜻)라는 동양적인 이름의 자체 브랜드를 내세웠다. 격물공부의 플로리스트들은 모두 조선호텔 직원, 즉 호텔리어다. 이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꽃에서도 일관되게 가져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격물공부는 절제된 톤을 유지하고 있는 이 호텔에서 가장 많은 컬러와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한켠을 차지한 냉장 쇼케이스 유리창 너머로는 온갖 종류의 꽃들이 각각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꽃마다 원산지 표시가 되어있는 것도 눈에 띈다. 장미는 국산과 에콰도르산, 작약, 델피늄, 스키미아, 아마릴리스, 카라, 아가판서스, 다알리아, 스카비오사는 네덜란드에서 날아왔다. 제임스스토리, 아란다, 모카라는 싱가포르, 신비디움은 뉴질랜드, 수국은 콜롬비아산이다. 전 세계에서 공수되는 격물공부의 꽃은 동네 꽃집에 있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그것들과 비교해 크기가 월등하며 컬러는 훨씬 뚜렷하다. 누가 봐도 특1급이다. 반포와 양재동 꽃시장을 제법 다녀봤어도 이런 꽃은 구경하기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격물공부의 꽂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데 신세계 백화점의 값비싼 과일바구니를 받아든 기분과 비슷했던 기억이 난다.

▲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플라워 샵 ‘격물공부’

롯데호텔 서울 역시 최근 본관과 신관 로비의 꽃장식에 많은 신경을 쓴다. 호텔 전체의 스타일에 컨설팅을 하고 있는 디자이너 정구호 특유의 심플하고 모던한 느낌이 꽃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더 플라자 지하에는 호텔 직영 플라워샵 지스텀(Xystum, 유럽식 정원이 있는 산책길이란 뜻)이 시크한 매력을 뿜어낸다. 모던 유러피언 스타일을 지향하는 지스텀의 플라워 데코레이션은 지극히 섬세하다. 계절감, 인테리어, 조명 등을 고려해서 길이감, 꽃 종류, 화기 등을 고르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전체적인 분위기, 특히 사회적인 분위기를 고려하는 것도 지스텀의 플로리스트들은 잊지 않는다. 우리 역사의 주요 장면들을 더 플라자는 모두 내려다 봤기에 자연스레 몸에 배인 사려 깊음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다.

꽃이 없는 호텔에는 향기가 없다. 브랜드와 자부심은 먼 나라 이야기다. 그저 가성비와 효율이 지배하는 정글 같은 현실, 그리고 낡고 그저 그런 호텔로 전락하는 어두운 미래만 기다릴 뿐이다.

_ 전경우 스포츠월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