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켄싱턴 제주 호텔

<1973년부터 정부의 계획 하에 세계적인 휴양지로 개발된 지역이다>

인도네시아 발리 누사두아Nusa Dua 리조트 단지를 설명하는 글의 시작 부분이다. 눈에 익었다. 제주 중문단지를 설명하는 글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동갑내기 리조트 단지의 시작은 비슷했지만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지금 두 지역의 사정은 많이 다르다. 발리는 세계적인 휴양지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지만 제주도는 국내 수요와 중국, 일본 등 인접국에서 오는 여행객들에게 의존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발리의 면적은 5561㎢, 인구는 약 300만 명 가량이다. 최고봉인 아궁 화산(3142m)을 비롯하여 몇 개의 화산이 우뚝 솟아 있다. 아궁 화산은 옛날부터 도민(島民)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온 성산(聖山)이기도 하다. 섬 전체에는 4600여 개의 힌두 사원이 산재하고 있으며, 주민들의 생활과 밀착해 있다.

제주도는 한라산(해발 1950m)을 중심으로 타원형의 본섬과 8개의 유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제주도의 면적은 1847㎢다. 육지와 다른 토속적인 문화와 신앙이 발달해 있으며 섬 전체에 391개의 신당이 남아 있다. 이 부분 역시 참 비슷하다.

두 섬에서 확연히 차이가 나는 부분은 호텔과 리조트의 숫자다. ‘물리아, 세인트 레지스, 콘래드, 불가리, W, 그랜드 하얏트, 인터컨티넨탈, 포시즌, 반얀트리, 리츠칼튼, 르 메르디앙……’ 인도네시아 발리의 덴파사르 응우라 라이 공항에 도착해 스마트 폰 구글맵을 실행시키면 온통 OOO호텔, OOO리조트다. 발리는 ‘호텔 앤 리조트로 이루어진 섬’ 같다.

다시 제주로 돌아가 보면 호텔 앤 리조트 인프라는 발리에 비해 규모와 숫자가 확연히 적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1985년 하얏트 리젠시 제주 개관 이후 글로벌 체인 호텔들의 진출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제주에서 5성급 리조트 호텔로 가치를 지닌 곳은 하얏트 이외에는 신라, 롯데, 해비치, 켄싱턴 같은 로컬 브랜드가 전부다.

▲ 하얏트 리젠시 제주

최근 몇 년간 제주도는 중국인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 수요와 국내 레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호텔과 리조트는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새롭게 건설되는 대형 호텔과 리조트는 투자 목적의 분양형 호텔이나 중국인의 영주권 취득을 위한 형태가 유독 눈에 띈다. 그리고 공항과 가까운 제주시에는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운 비즈니스(휴양지에서 왜 ‘비즈니스 호텔’이라는 단어를 쓰는지 모르겠다)호텔이 들어서고 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일단 제주로 떠났다. 이윤규 총지배인을 만나기 위해서다. 제주신라호텔의 폭풍성장의 핵심에 서있던 그는 중문에서 가장 최근에 오픈한 켄싱턴 제주 호텔로 자리를 옮겨 클럽매드를 떠올리게 하는 ‘올인클루시브’를 전면에 내세워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제주의 호텔 앤 리조트 산업을 이야기 해줄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인 셈이다. 그는 세일즈와 구매, 마케팅 부서를 두루거치며 호텔리어로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이윤규 총지배인은 “제주도는 인건비가 비싸다”는 것을 제주도 호텔 앤 리조트 사업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럭셔리 리조트에서 당연시되는 버틀러 서비스 같은 인적 인프라를 내세운 업그레이드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계절성의 극복 역시 풀어내야 하는 숙제로 꼽았다. 사계절이 있다는 것이 결국은 가장 큰 걸림돌인 셈이다. 글로벌 호텔 브랜드들은 꾸준히 제주도 시장을 찔러 봤지만 이 부분에서 결국 포기했다. ‘아름다운 섬에 있는 리조트 호텔’에 대한 이미지는 결국 비키니를 입고 바다에 뛰어드는 ‘여름’이기 때문이다. 제주의 매력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각각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지만 호텔 입장에서 “8개 씬, 즉 봄 여름 가
을 겨울의 낮과 밤”을 채워 넣기 위해서는 고비용이 추가된다. ‘8개의 장면’을 무시했던 시절 제주도의 특급호텔들은 “여름 성수기 장사가 메인이고 봄에는 유채꽃, 가을에 잠깐 단풍철 있다가 겨울에 큰 적자를 내는” 패턴을 반복했다. 50일을 바짝 일하고 300일쯤은 ‘비수기’라는 이름으로 보낸 셈이다. 한라산에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은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지나치게 길었다. 직원의 숫자를 늘리기에는 큰 부담이 됐다.

▲ 켄싱턴 제주 호텔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 만든 것이 ‘사계절 온수풀’이다. 제주신라호텔이 지난 2009년 선보인 온수풀은 겨울철 투숙률을 80~90%까지 끌어올리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일단 수온을 30도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호텔의 폐열을 이용하는 ‘히트펌프 보일러’를 도입해 일단 물을 데웠다. 하지만 제주의 겨울철 칼바람은 만만치 않았다. 온수풀 주변에 카바나를 이용한 벽을 두르고 중간 지점에 사우나를 설치하는 등 온갖 보완책이 나왔다. 손님들은 온수풀의 매력에 빠져들며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제주신라호텔은 올여름 숨비정원에 새 수영장과 풀사이드 바를 추가로 오픈할 계획도 갖고 있다. 신라가 맛본 드라마틱한 성공에 자극받은 롯데는 2013년 100억을 쏟아 부어 해온을 만들었다. 롯데 역시 매출이 40%이상 올랐고 그룹에서 신동빈 회장이 직접 주는 마케팅 상까지 받았다.

2014년 개관한 켄싱턴 제주 호텔 역시 온수풀은 핵심 시설이다. 가장 최근에 지어진 만큼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공간을 나눴다. ‘스카이피니티 풀’은 성인 전용, 지하 2층 실내·외 수영장이 이어진 온수 풀 ‘커넥팅 가든 풀’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손님용이다. 커플과 아기엄마가 서로 눈치 보지 않으니 마음이 편하다. 켄싱턴의 ‘스카이피니티 풀’은 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으로 옷을 갈아입고 핫한 클럽으로 변신한다. 이윤규 총지배인은 “풀장은 시설로 이해되고 있는데 서비스가 덧씌워져야한다. 수조가 핵심이 아니다. 외국에 가보면 썬베드나 카바나 등 시설과 서비스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결국 ‘온수풀’은 제주도에서는 진리가 됐다. 이윤규 총지배인은 “온수풀은 기획의 승리가 아니다. 운영을하면서 개선을 했기 때문이다. 텅 빈 풀장에서 누군가 수영을 해야했고 로테이션을 돌리고. 수영장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일 년 내내 고생했다. 직원들의 끊임없는 아이디어가 없었으면 성공하지 못 했다”라고 회상했다.

제주도에 발리를 상징하는 키워드인 ‘풀 빌라’를 도입하면 어떨까? 이윤규 총지배인은 고개를 저었다. “풀 빌라는 2박 패턴으로 객단가를 높일 수 있지만 ‘양날의 검‘이다. 물을 2박마다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따른 인건비도 많이 든다”는 것이다. 제주의 특1급 호텔 중에서는 롯데가 유일하게 풀 빌라 스위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다른 호텔들이 선뜻 나서지 않는 이유다.

온수풀 이외에도 다른 노력들은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글램핑이다. 캠핑의 즐거움에서 엑기스만 뽑아낸 신라의 글램핑 열풍은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번졌다. 제주신라호텔은 최근 숲속의 오두막 ‘키즈 캐빈’을 만들어 호평 받았고, 탁 트인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시설물도 계획하고 있다.

▲ 제주신라호텔 키즈 캐빈

숙박객들과 함께 레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형태는 해비치의 익스플로러가 가장 먼저 시작했지만 빛을 보지 못하다 신라의 G.A.O, 롯데의 에이스가 뒤를 이어 등장 하며 대세로 자리 잡았다. ‘온수풀’이나 ‘글램핑’처럼 누군가 먼저 시작하고 모두가 따라가야 결국은 성공하는 패턴이 여기서도 발견된다.

지금까지 히스토리를 살펴봤다. 그렇다면 최근 상황은 어떨까? 이윤규 총지배인은 “제주시장은 20~40대의 힘으로 성장했다. 고객 구조의 마스터플랜이 가장 중요한데 중장년 커플들을 유치하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갤러리나 F&B를 강화하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호텔에서 삼시세끼’를 내세운 켄싱턴 제주호텔은 식음업장에 특별히 공을 들인다. 레스토랑 숫자만 일곱 개다. 중국 유명 도예가 주락경과 자호이, 티에양의 작품을 비롯해 이왈종, 배병우 등 유명 작가의 작품들이 빼곡한 이유도 다양한 계층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다.

제주신라호텔은 서울을 평정한 뷔페 레스토랑 ‘더 파크뷰’를 제주로 가져와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잠을 자도 조식은 호텔 급을 원하는 여행자들이 아침마다 줄을 서기 시작했다.

해비치도 음식이 강하다. 셰프 커리어의 이민 대표이사 겸 총지배인이 오면서 음식이 확 달라졌다. 최근에는 일식+한식당 ‘하노루’를 ‘제주 다이닝’으로 바꿔 좋은 반응을 얻었다. 6월에는 모던 프렌치 컨템포러리 레스토랑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에 미슐랭 스타급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성공시켜 보겠다는 의지다. ‘제주’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이다. 지역적인 특징을 내세우는 전략은 인터내셔널 체인 호텔들에서 자주 보인다. 서울의 체인호텔에 가면 유난히 김치 종류가 많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제주 유일의 인터내셔널 브랜드 호텔이라는 이점을 누려온 하얏트 리젠시 제주는 돌하루방, 청사초롱 같은 상징물을 즐겨 사용한다. 제주신라호텔이나 롯데호텔 제주의 ‘무국적’ 전략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인근 색달마을과의 협력 관계도 탄탄하다. 호텔 앞 바닷가에서 물질을 하던 해녀들은 여름 프로모션인 ‘서머오미바비큐뷔페’ 시즌에는 레스토랑에서 해산물을 직접 손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업체 행사에서도 해녀들은 인기가 높다. 하얏트 리젠시 제주는 최근 30주년을 맞아 호텔 전체를 재정비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 해비치 하노루

제주 지역 호텔 앤 리조트에는 여전히 순풍이 불고 있다. 변수가 심한 서울 호텔들보다 상황이 훨씬 좋다. 복합카지노리조트나 제2의 중문단지계획 같은 거대 자본이 투입될 모멘텀은 아직 없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인프라를 극대화 시키는 질적인 성장은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이윤규 총지배인은 “환경적 요인에 따른 호황은 호텔을 망친다”고 경계하면서도 “국내 레저 수요의 성장세는 계속될 것이고 여행의 채널이 온라인으로 통폐합 되면서 중국인 FIT 수요도 꾸준히 늘어날 것이다”라는 예측을 내놨다. 숙련된 인력을 구하기 어려웠던 부분에도 희망은 보인다. 제주로 내려간 도시출신 이주민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발리에도 고민은 있었다. 물리아 발리 관계자는 “항공이나 환율, 인지도 등 외부적 요인에 더 민감하며 ‘발리’라는 지명의 인지도가 아직도 약한 것이 사실”라며 “똑같은 동남아에 비해 밤에 즐길 거리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_ 전경우 스포츠월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