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호텔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일 것이다. 라스베이거스는 호텔과 카지노로 이루어진 도시다. 총 283개의 호텔이 밀집해 있고, 5성급 호텔이 11개이며, 세계 20大 호텔 중 10곳이 이 도시에 있다. 라스베이거스는 세 가지로 유명하다. 호텔, 도박, 그리고 이혼.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이혼하기 위해 4주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부부의 동의와 서류 한 장만 있으면 바로 이혼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호텔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왜? 카지노 때문이다. 카지노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다른 도시에 비해 훨씬 싼 가격으로 호텔에 묵을 수 있다. 호텔에 쓸 돈을 아껴서 도박에 쓰라는 친절한 배려다. 1946년 크리스마스에 전설적인 갱스터 벅시 시걸이 네바다 사막의 모래 위에 플라맹고 호텔과 카지노를 개장한 이후로, 이 도시의 이름은 환락의 대명사가 되었다. 오죽하면 엘비스 프레슬리가 ‘라스베이거스 만세(Viva Las Vegas)’라 노래했겠는가.

우리는 흔히 미국을 가장 자유로운 국가라고 생각하지만(그리고 일정 부분 그렇기도 하지만), 세속적 쾌락에 대해서 미국은 생각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곳이다. 하지만 미국은 유럽의 구체제와는 다르게 엄격함 속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예외로 인정한다. 미국 대부분의 주(州)에서 상설 도박장은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한 사회학자가 ‘엄격한 위선자들’이라 지적했듯이 미국인들은 모든 도덕적 위선을 벗어던지고, 돈만 있다면 무한한 쾌락을 누릴 수 있는 해방구를 마련해두었다. 서부의 라스베이거스가 그렇고, 남부에는 빌럭시(Biloxi)가 있다.

빌럭시는 미시시피 주와 루이지애나 주의 경계에 위치한 항구다. 이곳은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것도 아니요, 활발한 무역으로 유명한 것도 아니다. 빌럭시는 도박 도시다. 인구 5만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로, 도시 규모는 인구 60만에 달하는 라스베이거스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도박 산업의 규모는 만만치 않아서, 빌럭시에는 대략 20여 개의 카지노와 90여 개의 호텔이 있다. 이른바 남부의 라스베이거스. 일확천금을 꿈꾸는 자들과 그들의 돈을 벗겨먹는 걸 생계로 삼는 사람들의 도시. 그런데 재밌는 건, 미시시피 주와 루이지애나 주 모두 상설 도박장이 불법이다. 그럼 빌럭시가 어떻게 도박 도시가 될 수 있었을까? 빌럭시에 있는 카지노들은(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가기 전까지는) 모두 땅 위가 아니라 바다에 있었다.

빌럭시에 처음 카지노를 열었던 사람은 커다란 범선의 선주였다. 그는 자신의 낡은 범선을 카지노로 개조해 바다에 띄웠다. 미시시피 주법에는 "미시시피의 땅 위에서 도박장을 열 수 없다"고 쓰여 있지, 바다 위에 도박장을 열지 말라는 구절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의 카지노는 합법으로 인정되었고, 그 후 새로운 카지노선들이 이 빌럭시의 해변에 정박하기 시작했다. 5킬로미터 정도의 긴 해변을 따라 거대한 카지노선들이 석양을 받으며 불을 밝히는 모습은 정말이지 장관이다. 가장 큰 카지노선은 10층 빌딩 높이다. 24시간 슬롯머신, 포커와 블랙잭 테이블들, 칵테일 바, 대게와 굴요리가 맛있기로 유명한 레스토랑, 스트립 댄서들이 남자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토플리스 바, VIP 전용실, 스위트룸까지 갖추고 있다. 그 환상의 배 위에서, 당신은 돈만 있다면 모든 쾌락을 살 수 있다.

나와 내 친구들이 빌럭시에 대해 알게 된 때는 남부의 무더위가 정점을 치던 97년 8월 하순이었다. 도박이 불법인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건너온, 혈기왕성한 이십대 초반의 청년들은 그 소문을 듣자마자 빌럭시를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빌럭시에서 가장 호화로운 카지노선은 ‘Treasure Bay Casino’야. 그 배 맨 아래층에는 토플리스 바가 있는데, 스트리퍼들이 아슬아슬한 끈 하나만 걸치고 춤을 춘대. 그 끈 사이에 100달러 한 장을 끼워주면, 그것마저도 남김없이 벗어준다는 거야. 그러니 어찌 한 번 가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미시시피 주 지도를 구해 빌럭시에 빨간 동그라미를 치고, 1박 2일로 소형차를 렌트했다. 불타는 금요일 오후 6시, 저녁을 든든히 먹은 우리는 마침내 빌럭시를 향해 출발했다. 각자의 지갑에는 200달러씩이 들어 있었다. 환율이 800원이 채 안되던 때니, 한화로 치면 15만원 정도였다. 우리들 중 한 사람이라도 1000달러 넘게 따면, 손 털고 일어나 레스토랑에 가서 킹크랩에 맥주 한 잔 걸친 뒤, 맨 아래층 토플리스 바에 가서 밤새 노는 거야. 죽이지 않냐?

남부를 가로지르는 하이웨이에서 이정표를 보고 국도로 나오자 오후 7시 무렵이었다. 한 시간 쯤 더 가면 빌럭시가 나타날 것이었다. 그러나 두 시간을 넘게 달려도 빌럭시는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막막하게 펼쳐진 남부의 평야뿐이었다. 지평선 말고는 보이는 게 없는 도로 위에서, 우리는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불안해하는 우리를 막아 선 것은, 대륙을 횡단하는 화물 열차였다. 멀리서 보기에도 그 열차는 끝없이 길었다. 건널목에 차를 세우고 보니 열차의 머리와 꼬리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빌럭시에 못가는 건 아닐까 불안해하며 화물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무개차(無蓋車)인 화물칸에는 별의별 것들이 실려 있었다. 석탄더미, 곡물, 농기계, 중고 자동차, 심지어 소들이 여물을 씹고 있기도 했다. 급할 것 없는 열차는 정말이지 천천히, 시속 20킬로미터에 못 미치는 속력으로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었다. 주위는 저녁 어스름으로 가득했다. 차단기의 번쩍이는 램프와 날카로운 경고음, 열차의 덜컹거리는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했다. 빈 들판뿐인 황야를 가로지르는 화물열차는 게르만 신화에 나오는 세상의 끝을 둘러싸고 있다는 뱀처럼 보였다. 우리는 난처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러다 빌럭시에 못 가게 되면 어쩌지?

그날 밤 우리는 빌럭시에 찾아갔을까. 빌럭시의 카지노에서 1000달러를 벌어서, 소원대로 토플리스 바에서 밤새 환락을 즐겼을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화물 열차가 결국 지나갔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것. 그 끝에서 우리는, 옳은 길이건 그른 길이건 간에, 다시 목적지를 찾아 떠날 수 있었다.

 _배호남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P.S. 2005년 미국 남부를 휩쓴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빌럭시 해변의 카지노선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지금은 바다가 아닌 해변에 카지노와 호텔들이 새롭게 개장했다고 한다. 석양을 등진 거대한 카지노선에 점점이 불이 들어오는 장관을 이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왠지 쓸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