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집이 발표됐다고 한다. 제목은 「여자 없는 남자들」. 참으로 하루키다운 책제목이다.

그의 소설 속 남자들은 사실은 여자가 필요 없는 남자들이다. 그들은 스파게티 면을 맛있게 삶는 방법을 알고, 오래된 팝송을 줄줄이 외우고, 바람의 노래를 들으며, 핀볼 기계와 대화를 나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사랑한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주인공처럼, 그들은 하나의 완결된 세계이다. 그 완결된 세계 속으로 갑자기 타인이 침입해 오고, 사건이 생기고, 모험을 떠난다. 그러나 모든 모험이 끝난 자리에, 그들은 다시 홀로 남는다.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남자의 쓸쓸함, 그것이 하루키 소설의 요체다.

그런데 그 쓸쓸함에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이 있다. 마치 영화 「말타의 매」(1941)의 주인공 험프리 보가트처럼, 자신만의 작은 방에 앉아 위스키 온 더 락을 홀짝이며 “아, 다시 혼자가 돼서 정말 다행이야…….”라고 읊조린다. 우리는 모두 결국은 혼자라는 것, 그리고 그 쓸쓸함을 받아들어야만 한다는 것.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제는 해마다 하루키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하루키 문학에 대해 석․박사 학위논문까지 나오는 시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하루키의 초기 소설들이 더 좋다. 특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쫒는 모험」으로 이어지는 ‘나와 쥐의 이야기’ 3부작을 좋아한다. 그 중 「양을 쫒는 모험」에는 삿포로에 있(다고 여겨지)는 희한한 호텔이 나온다. 호텔의 이름은 ‘돌핀 호텔’. 그 호텔은,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거의 형이상학적 분위기가 감돌 정도로” 개성 없는 호텔이다. 간판도, 네온사인도, 제대로 된 현관조차도 없다. 심지어 레스토랑도 커피숍도 없다. ‘쓸데없는 것’은 하나도 없는 호텔. 다시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그 호텔은 “오래 머물기에 좋은” 곳이며, 혼자되기에 좋은 곳이다.

호텔에서 살아본 적이 있는가? 일주일 혹은 길어야 한 달 여행이나 관광을 위한 숙박 말고, 1년이나 2년 넘게 호텔에 주거를 갖고 살아본 적이 있는가? 나는 중국의 한 호텔방에서 2년간 생활한 경험이 있다.

2008년 8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나는 중국 산동성 옌타이시(市)의 위웨이홍 호텔에 2년간 머물렀다. 그 2년간 나는 옌타이대학의 한국어학과에서 중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교수로 재직했다. 외국인 교수들을 위해 대학이 마련한 숙소가 호텔방이었는데, 왜냐면 위웨이홍 호텔이 대학 캠퍼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왜 캠퍼스 안에 호텔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심지어 그 대학에는 호텔과 관련된 학과도 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대학의 설립자 이름을 딴 그 호텔은, 하루키 소설 속의 ‘돌핀 호텔’처럼, ‘쓸데없는 것’은 하나도 없는 호텔이었다.

호텔은 1970년대 중반에 지어진 5층 건물이었다. 중앙에 프런트와 홀이 있는 본관이 있고 양 옆으로 웨스트 윙과 이스트 윙에 객실이 있는, 붉은 벽돌지붕을 올린 독일식 시멘트 건물이었다. 처음 건축됐을 때는 분명 웅장했을 것이지만, 내가 살던 무렵에는 이미 30년이 넘어서 낡을 대로 낡은 건물이었다. 덜컹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면, 303호, 내가 2년간 머물렀던 방이 있다. 방에 대한 첫인상은 천장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었다. 유럽풍으로 지은 높은 천장의 방에는 아치형의 넓은 창이 있어 채광이 좋았다. 그런데 볕이 너무 잘 들어서 문제라는 걸 나는 다음날 아침 깨달았다. 창이 정 동쪽으로 나 있어서 해 뜨자마자 빛이 쏟아져들어 왔다. 그리고 그 창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우리가 서해라고 부르고, 중국인들이 황해라고 부르는 바다. 호텔은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백사장과 마주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방은, 상상하기에는 낭만적이지만 생활하기에는 고역이었다. 겨울 매서운 바닷바람이 불 때면 웃풍이 심한 낡은 방은 냉기로 가득 찼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머리맡에 떠 놓은 자리끼에 살얼음이 껴 있었다. 여름에 태풍이 몰아칠 때면 유리창이 깨지지는 않을까 밤새 걱정에 떨기도 했다.

그 낡고 쓸쓸한 방은 2년간 내 것이었다. 그 방에서 나는 완전히 혼자일 수 있었다. 외국에서 혼자 국외자로 살아가는 삶이란, 압도적인 외로움과 마주하는 삶이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다. 여자는 물론 없다. 일주일에 스물 네 시간 강의를 하고 나면, 나머지는 오로지 나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광활한 캠퍼스(중국의 대학들은 정말, 정말 넓다)를 배회하기도 하고, 인문관 뒤편 백양나무 숲 벤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했다. 일요일에는 호텔 5층 연회장에서 어김없이 결혼식이 열렸는데, 나는 매주 거기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참석해 모르는 커플들의 결혼을 축하하며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해질녘이면 6차선 도로를 느릿느릿 건너가, 백사장에 앉아서 등 뒤로 석양이 지는 것을 느끼며 미지근한 칭따오 맥주를 마셨다. 가끔 새벽에 잠에서 깨면, 혼자 일어나 앉아서 좋아하는 올드 팝을 틀어놓고 습관처럼 글을 끼적였다. 그러다보면 하루키 소설의 남자주인공들이 깊이 이해가 됐다. 아, 우리는 결국 혼자구나. 이 호텔방에 놓인 싱글 베드처럼. 그 2년의 삶은 뭐랄까, 나라는 존재의 갈피갈피에 쓸쓸함을 스며 넣는 시간이었다.

2년의 재직기간을 마치고 나는 미련 없이 그 방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돌핀 호텔’ 303호를 떠나온 지 벌써 4년이 넘었다. 그 4년 동안 내게는 많은 일이 있었고, 나는 이제 그 시절의 쓸쓸한 험프리 보가트가 아니다. 가끔씩 그 방을 생각하면, 아직도 그 시절의 내가 그곳에서 혼자 맥주라도 홀짝거리고 있을 것 같다. 그는 ‘과거의 나’지만, 지금의 나와는 다른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 방문을 열고 들어가,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때 그 쓸쓸함을 견뎌줘서 고마워. 그 외로움의 힘으로, 나는 오늘 이 정글 같은 삶을 살아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