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부(富)가 모이는 듯 했던 20세기 초 뉴욕에는 록펠러(Rockefeller), 밴더빌트(Vanderbilt), 카네기(Carnegie) 등 많은 명문가가 있었다. 이중에서 뉴욕 사교계를 주도했던 가문은 바로 애스터(Astor)였다. 귀족적인 전통을 중시한 애스터 가문의 캐롤라인 애스터는 ‘레이디 애스터’라 불리며 뉴욕 사교계를 이끌었는데 그녀가 작성한 400인의 명부는 상류층 인사의 명예와 지위를 나타내는 척도였다.

애스터 가문이 호텔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사소한 집안싸움 때문이었다. 레이디 애스터의 시조카이자 애스터 가문의 장손인 윌리엄 월도프 애스터가 1893년 자신의 맨션을 허물고 13층 높이의 윌도프 호텔(Waldorf Hotel)을 지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윌도프 호텔은 바로 레이디 애스터 맨션의 옆자리여서 조망권을 침해했기에 가뜩이나 좋지 않은 사이가 더욱 악화됐다. 레이디 애스터는 곧바로 아들인 존 제이콥 애스터 4세에게 맨션을 부수고 17층 짜리 아스토리아 호텔(Astoria Hotel)을 건설하라고 명한다. 이후 두 호텔은 하나의 호텔로 합쳐지고 1928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신축 부지를 위해 이전하면서 지금의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Waldorf-Astoria Hotel)이 된다. 레이디 애스터에게 미움을 받던 윌리엄 월도프 애스터는 결국 뉴욕을 떠나 영국으로가 자작의 직위에 오르게 된다. 이런 앙숙의 관계는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것인지 현재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은 힐튼 계열에, 세인트 레지스는 스타우드 호텔 앤 리조트의 최고급브랜드로 경쟁하고 있다.

▲ St. Regis New York Grand Ballroom

한편, 레이디 애스터는 뉴욕 최상류층에 걸맞은 사교의 장을 만들기 위해 다시 아들을 시켜 맨해튼 5번가에 새로운 호텔을 건립한다. 1904년 첫 선을 보인 이 호텔이 바로 세인트 레지스 뉴욕이다. 레이디 애스터는 자신이 사랑하는 다이아몬드와 카사블랑카를 호텔에 고스란히 묻어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세인트 레지스 로고에는 다이아몬드가, 그리고 호텔 로비는 현재까지도 카사블랑카 생화로 장식되어 있다. 당시 세인트 레지스는 애프터눈 티 세트와 고급 샴페인 등 귀족적인 우아함뿐 아니라 중앙난방과 객실마다 설치된 전화 같은 최첨단 설비로도 유명했다. 매일 밤 상류층의 연회가 끊이지 않는 가장 뉴욕다운 호텔이었다.

▲ St. Regis New York Lobby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하는 세인트 레지스 뉴욕은 작년 11월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새롭게 디자인한 스위트룸과 함께 뉴욕의 유명셰프 존 델루시에와 함께 신설한 킹 콜 바 앤 살롱(King Cole Bar & Salon)을 공개했다. 맨해튼의 상징적인 장소인 킹 콜 바(King Cole Bar)는 1906년 맥스필드 패리시가 그린 콜 왕의 그림이 걸리며 이와 같은 이름을 얻었다. 킹 콜 바의 대표 메뉴는 바로 블러드 메리. 세인트 레지스 뉴욕은 보드카에 토마토 주스를 섞은 블러드 메리의 원조로, 이후 다른 세인트 레지스 호텔에서도 특유의 블러드 메리 시그니처 칵테일을 만들어 고객에게 선보인다. 존 델루시에와 협업한 킹 콜 바 앤 살롱은 모던 스타일의 아메리칸 요리를 개발하여 21세기에서도 뉴욕 상류층과 고급 여행자에게 세인트 레지스 뉴욕 특유의 경험을 선사하려 한다.

세인트 레지스 뉴욕의 대표적인 자랑거리 중 하나는 바로 디자이너 스위트다. 현재 디올, 티파니, 벤틀리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선보이는 객실은 한 번 숙박하기 위해 9500달러 이상이 필요하지만 클래식과 모던, 거기에 럭셔리 브랜드가 가미되어 특별한 경험을 위한 최고의 호텔로 손꼽힌다.

▲ King Cole Bar & Sal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