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를 여름에 여행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축복받은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해가 지지않는 나라'에서 하루종일 알차게 놀려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밤이 없으니 밤새 놀더라도 그리 부끄럽지 않을 일이다. 호텔 프론트에 들어올 때도 '저 사람은 왜 밤늦게 돌아다니지?'하는 업신여김을 받지 않아도 된다. 새벽 3시까지 마신대도 방금 퇴근한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들어와 누우면 그만일게 아닌가.

▲ 핀란드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그로부터 3개월 후 나는 정확하게 2013년 7월 마지막 주 핀란드 로바니에미(Rovaniemi) 시내 산타클로즈 호텔에 있었다.

세계적 아이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낼름 가져와버린 핀란드인들의 상술이란 아랍 베두인족이나, 네덜란드 혹은 중국 화상(華商)에 비교할만 하다.

산타클로스(성 니콜라스)는 실은 소아시아(터키 부근)에 살았다고 하니, 지금의 산타클로스 마을에 살았다면 선물배달은 고사하고 일년내내 감기를 달고 살았을게 분명하다.

여름의 산타클로스호텔은 정말 초라하다. 적록색의 램프 따윈 전혀 켜놓지 않았을 뿐 더러 크리스마스 트리 역시 없었다. 알고보니 핀란드인들은 플래스틱 가짜 트리에 솜을 붙여 눈을 만드는 것엔 무관심해보일 정도가 아니라 거기에 대해 공격적인 눈빛을 보낸다.

백야의 중심이 지나고 있는 로바니에미. 나는 이상하게도 이 이름이 잘 외워지지 않는다. 언젠가 다녀온 남인도 케랄라 주 쿠마라콤이나 브루나이 왕국의 반다르세리바가완도 정확하게 기억해내고 발음할 수 있는데(물론 쓸수는 없다) 한글로 겨우 다섯자 밖에 되지않는 이곳 만큼은 체재하는 내내 줄곧 로메이에르, 또는 로마미에르로 이야기를 하고 만다.

아무튼 나는 인천 활주로에서 힘겹게 안전벨트를 동여맨지 정확히 17시간만에 아까 그…(로미바니에였던가?) 북위 66도쯤 되는 도시의 작은 공항에 착륙했다. 이곳은 정확하게 북극권(Arctic Circle)에 걸친 곳이므로 북극이라 지칭해도 되지만, 콜라 병을 손에 든 백곰새끼 따윈 볼 수 없었다. 다만 헬싱키에서 육로로 이곳까지 오려면 코콜라(Kokola)란 곳을 지나야하는데 그곳이 의심가긴 했다.

북극의 기온은 섭씨 7~13도로 생각보다 춥지않아서, 공기는 살얼음이 낀 사이다처럼 청량하고 선선하다. 전기밥솥같은 한여름 서울을 떠나와 숨만 쉬어도 몹시 즐겁다.

▲ 앵그리버드 공원

조그마한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눈으로 덮힌 툰드라는 없었다. 평평한 드넓은 대지에 웅덩이같은 호수와 침엽수림 만이 펼쳐져있다. 창밖으로 본 구름을 빙하로 착각했던 나는 크게 실망했지만 북극여행에 대한 기대를 접지않고 열심히 가이드북을 뒤적거렸다.

핀란드는 위도 상 세계 최북단에 위치한 나라다. 최북단의 경우 여름에 73일이나 백야가 지속되고 반대로 겨울에는 해가 뜨지 않는 날이 50일이 된다니 국민들의 적응력이 놀랍기만 하다.

북극 로미에베르(이게 맞나?)에는 곰과 순록 대신 모기 수천만 마리가 여름 타이가(Taiga)의 푸른 대지를 날아다니고 있다. 모기가 많은 이유는 바로 핀란드가 '호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핀란드관광청에 따르면 '핀란드에는 빙식작용으로 생겨난 18만8000개의 호수와 그안에 17만9000개의 섬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항상 이런 많은 숫자에 대해선 의심이 가곤 한다. 여기서 매년 추정치 34억7425만641마리(꽤 그럴싸하다)의 모기가 생겨난다. 물론 내가 방금 지어낸 수치다.

심지어 물기도 하는 이 극성스러운 모기 탓에 여행이 고통스러울 법하지만 사실 핀란드는 여행의 매력으로 홍보하고 있는 듯 하다.

기념품숍에도 모기 관련 상품이 아주 많다. 특히 모기떼가 잔뜩 그려진 티셔츠에는 핀란드 공군(Finnish Air Force)이라고 쓰여있다.

가장 압권은 바로 양봉업자들이나 하는 모기망 복장을 챙겨입고 떠나는 '미드나이트 선 페스티벌'이다.

일정은 간단하다. '해가 중천에 떠있는 밤 9시쯤' 모여 버스로 로바니에미 북부지방으로 출발한다. 바깥은 그냥 어둑한 오후처럼 보인다. 방충망을 쓰고 고무 옷을 챙겨입고 광훨한 너덜지대가 사방으로 펼쳐진 카트카 산(Katka.180m)에 올라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굴러다니는 태양의 바운스를 감상하는 일정이다.

▲ 핀란드를 대표하는 자작나무 숲

1만년전 이곳을 덮고있던 빙하가 짓이겨 생겨난 둥글한 바위 천지다. 자정이 가까웠지만 태양은 아직 지평선에 걸려있다. 물수제비처럼 바닥에 튕기는 듯 하더니 다시 떠오른다. 일출인지 일몰인지 구분이 되지 않지만 분명히 내일을 맞았다. 백야의 툰드라 위에서 일출을 감상하며 샴페인을 마시는 것으로 체험은 끝난다.

자료에 따르면 트레킹 도중 당연히 순록이나 울버린을 볼 수 있을 것처럼 되어있지만 인솔자는 말끝을 흐렸다. 대신 가끔 흥분한 목소리로 길에 떨어진 순록의 배설물을 가리키며 보라고 했지만, 일행들은 그것을 피해갈 생각만 했다.

▲ 시벨리우스 공원

백야에서의 생활이란 생각보다는 단조롭다. 무엇을 하든지 백주대낮에 하는 셈이다. 자정 무렵 맥주 한잔을 마셔도 대충 낮술이 되어버린다. 산책이나 데이트 역시 마찬가지다. 밤 10시가 넘어서 호텔에서 나와 주변 풍경을 찍으려 나왔더니, 호텔 앞 산책로에 차안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아베크족이 한쌍 있었는데 차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나는 밤이 없는 곳에서 데이트를 하는 이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라플란드(Lapland)는 핀란드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러시아 콜라반도 북부 지역을 지칭하는 말인데, 예로부터 이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은 서로 뿌리가 같아(수오미 족) 자기 나라의 남쪽 지방 사람보다 서로 더 친하다고 한다.

▲ 헬싱키 시내

이들은 순록을 기르며 낚시로 잡은 연어를 먹고 산다. 언어는 우리와 어순이 같은 우랄 계 언어를 쓰지만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핀란드어는 알파벳을 문자로 쓰지만 무척 어려워서 당최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을 뿐더러 아예 읽을 수 조차 없다.

글이 꼭 '오타'나 '와이파이 패스워드'같아서, 마치 내가 랩톱을 펼쳐놓고 기사를 쓰다 잠시 자판에 머리를 박고 졸았을때 화면에 찍힌 글처럼 서로 불규칙한 자모들이 나열되어 있다. 게다가 몹시 길어서 어떻게 읽어야 할지 당황하게 된다. 참고로 레스토랑 앞에 써있는 글귀를 소개하자면 "Odottakaa Ystavallisesti Poytiinohjausta(좌석 안내 시까지 기다리시오)"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은 얼마나 대단하고 고마운 분이었나?.

로바이베니(?)는 북극권에서 가장 이름난 도시다. 물론 쇄빙선들이 결집하는 북극해 출발지 트롬쇠(노르웨이)나 무르만스크(러시아)도 크게 번성한 곳이지만 관광지로서는 이곳이 가장 인기가 높다.

유럽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관광객들이(겨울엔 오로라, 여름엔 백야를 보기 위해)이곳을 찾는다. 그래서 핀란드인들은 북극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북극박물관(아르티쿰)과 산타클로스가 사는 마을도 만들어 놓았다.

이들의 판단은 꽤 적중했다. 산타할아버지는 과연 신비스러운 통나무집에 살고 있는데, 착한 어린이가 아니라면 입장료를 내야 만날 수 있다.(사실은 착한 어린이도 입장료를 내야 한다) 1층은 산타에게 편지를 보내는 우체통(사서함)이 있는데, 편지를 써서 이곳에 넣으면 '산타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답장이 주소지로 배송된다.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 핀란드 사우나

산타클로스를 만나러 굴속으로 들어갔다. 신비스러운 불빛이 번쩍이는 인조 동굴 끝에는 조그만 방이 있고 이곳에 산타가 홀로 앉아있었다. 꽤 정정해 보이는 산타할아버지는 실제로는 몇 명이 있어 교대로 일하는 비정규직이라고 했다. 산타는 인자한 표정으로 방문객이 이름을 말해주면 그 이름을 불러주며 "착하게 지내다 크리스마스 쯤 찾아갈테니 그때 만나자"는 내용을 유창한 영어로 말해준다. 역시 입장료 값을 한다.

목소리도 허스키하고 진짜 그림 속 산타처럼 생겼지만 방문객들과 일일이 사진을 찍고 동영상으로 메시지를 전해주는 '정정한' 모습에, 생각보다는 많이 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더 어린 산타라니.

▲ 헬싱키 시내 야경

<여행정보>
각종 정보_ 수도는 헬싱키, 통화는 유로화를 사용한다.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 국내 이통사 모두 현지 데이터로밍을 지원하며 전원코드는 국내와 같은 것을 사용한다.

필수 여행코스_ 1550년 한자 동맹 도시인 탈린을 견제하기 위해 건설된 헬싱키. 지정학적 위치가 좋아 북유럽 내 물류, 항만, 항공의 최적지로 꼽히는 곳이다. 시내를 중심으로 등이 흩어져 있으며, 장 시벨리우스 기념공원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인근 나안탈리(Naantali)는 해안 휴양도시로 옛 수도 투르쿠(Turku)와 함께 휴양지로 꼽히는 곳이다. 애니메이션 테마파크 무민월드(Moominworld)도 있다.

포르부(Porvoo)는 스웨덴 왕 에릭슨이 1346년에 세운 옛도시로, 제정 러시아식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들르는 곳이다. 작은 골목과 강변길을 따라 산책을 하며 공예품과 민예품을 구입해볼 수 있다.

헬싱키 서부 100㎞ 인근에 위치한 피스카스(Fiskars)예술가 마을은 증기기관 등을 생산하던 옛 공장지대에 예술가들이 모여 살면서 작업 활동과 전시를 하는 곳으로 여름(5~9월)에 관광객들에게 개방한다. 이곳에선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중심이 되는 핀란드의 예술에 대하여 경험해 볼 수 있다.

핀란드 남부 최대 국립공원 누욱시오(Nuuksio)국립공원은 거대한 호수를 끼고 있는 산림공원이다. 길가에 널린 블루베리를 따먹으며 트레킹을 즐기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