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투숙객의 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물품을 어메니티(Amenity)라 부른다. 넓은 의미로 보면 객실에 제공되는 침구와 바스 로브, 드라이기, 다리미, 커피, 생수, 문구류 등등은 모두 어메니티다. 의미를 확 좁히면 ‘호텔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욕실 용품’이 되겠다. 샴푸, 컨디셔너, 샤워젤, 바디로션 4종 세트와 치약, 칫솔, 화장솜, 면도기 등등이다.
어메니티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기분에 맞음, 쾌적함, 즐거움, 예의 등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다. 어원은 ‘쾌적한’, ‘기쁜’ 감정을 표현하는 라틴어 ‘아모에니타스(amoenitas)’ 또는 ‘사랑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아마레(amare)’다. 도시나 주거환경에서의 어메니티는 ‘쾌적한 환경’, ‘매력적인 환경’ 또는 ‘보통사람이 기분 좋다고 느끼는 환경, 상태, 행위’를 포괄하는 의미다.
사회학적인 개념도 있는데 산업혁명으로 19세기 영국의 도시에 몰려든 노동자의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발생하는 질병, 사망률 등을 낮추기 위해 공중위생으로부터 시작된 주거환경 개선 노력을 어메니티라고 부른다. 

물비누 따위가 호텔의 품격을 좌우하던 시절이 있었다. 호텔들은 록시땅, 아베다, 이솝, 몰튼 브라운 등등 온갖 좋다는 브랜드의 4종 세트(샴푸, 컨디셔너, 샤워젤, 바디로션)을 미끼로 타 호텔과 차별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만족했다. 집에서 쓰던 P&G나 애경, 아모레 제품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블로그나 SNS에 ‘나 이런 데 다녀왔다’고 자랑질을 할 수 있는 훌륭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어메니티는 돌아오는 여행 가방 한 구석을 당당히 차지하는 ‘귀하신 몸’이었다.

국내에서 어메니티를 내세운 마케팅이 성공한 사례는 신라호텔과 파크 하얏트가 대표적이다. 신라는 영국 왕실에서 사용한다는 몰튼 브라운을 제공하며 ‘격이 다른 호텔’이라는 이미지에 플러스 점수를 더했다. 몰튼 브라운은 타 브랜드 제품들에 비해 월등히 향이 강한데 이 브랜드를 이부진 사장이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항간에 떠돌기도 했다. 파크 하얏트 서울은 유기농 원료를 쓴다는 이솝 제품을 사용하는데 객실보다 훨씬 많은 제품들이 준비돼 있는 사우나 라커룸은 호텔 덕후들에게 큰 기쁨을 줬다. 콘래드 서울은 오픈 이후 3가지 제품을 고르는 신박한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예상치 못한 체리피커들의 역습을 받았다. 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교체를 요구하면 3가지 제품을 모두 ‘득템’할 수 있다는 후기가 알려지며 똑 같은 요청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 제품 교체를 요구하면 별도의 비용을 받는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상급 객실은 프랑스 브랜드 소티스가 들어간다) 등은 자사 브랜드가 박힌 어메니티를 고수한다. 브랜드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데 도움을 주고 단골손님들은 익숙한 향기에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대한민국 호텔 업계에서 어메니티 마케팅 경쟁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시즌2’라고 봐야할 정도로 뜨겁다. 포시즌스 서울 오프닝 프레스 킷에는 이름이 무척 길어 한 번에 읽기도 어려운 ‘로렌조 빌로레시 피렌체’ 브랜드의 객실 어메니티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소개됐다. 포시즌스가 욕실 어메니티를 중시하는 이유는 창업자 이사도어 샤프 때문이다. 그는 ‘24시간 룸서비스’, ‘체력단련실’, ‘구두닦이 서비스’ 등을 호텔업계에 처음 도입했는데 고급 제품을 욕실에 처음 제공하기 시작한 것도 그의 업적이다. ‘어메니티의 아버지’라 부를 만 하다. 모두가 주목하던 포시즌스 서울 오픈 이후 어메니티 고급화 경쟁은 후끈 달아올랐다. 최근 오픈한 롯데의 시그니엘 서울의 욕실 어메니티 제품은 무려 딥띠끄다. 바로 다음에 문을 연 파라다이스 시티는 여기에 영국 왕실 브랜드(너무 흔한 수식어같지만) 펜 할리곤스 제품으로 여기에 응수한다. 더 플라자는 클럽층 객실에 초록빛 영롱한 에르메스 제품을 넣어 준다. 오픈을 앞두고 있는 럭셔리 호텔들은 이제 또 다른 고급 브랜드를 찾아야 한다. 디올이나 샤넬 로고가 선명한 어메니티도 조만간 튀어 나올 기세다.

럭셔리를 표방하는 호텔들은 샴푸와 샤워젤, 비누와 로션에는 목숨을 걸지만 의외로 치약과 칫솔, 면도기 등에 쓰는 돈은 인색하다. 치약은 브랜드가 없는 제품이 대부분이거나 콜게이트의 기본 라인 제품이 많다. 요즘은 치실을 비치하는 호텔도 많은데 어메니티로 제공된 싸구려 칫솔의 브러시 부분이 빠져나와 생선 가시처럼 이빨에 끼었을 때 무척 유용하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면도기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날의 품질이 좋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라 인중과 턱 부분에 원하지 않는 스크래치가 무수히 생겨난다. 동봉된 쉐이빙 폼의 품질은 면도기의 성능과 비례한다. 지금까지 경험한 호텔 중 세이빙 킷에 뭔가 신경을 썼다고 느꼈던 호텔은 서울 신라호텔이 유일하다.

중고나라 카페를 검색해 보면 위에 열거한 호텔들의 어메니티가 풀세트 구성으로 버젓이 거래되고 있는데 투숙객들이 퇴실하며 가지고 나온 물건들이다. 미사용 풀패키지가 거래되는 금액은 대략 1만 원에서 1만5000원 내외 가격을 형성한다.

‘어메니티 숭배’ 문화는 여전해 보이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도 변하는 모습도 감지된다. 호텔의 문턱이 낮아지고 ‘스테이케이션’ 열풍이 이어지며 어메니티는 점점 ‘특별한 아이템’의 지위를 상실하고 있다. 호텔 투숙객들이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긴 것이 ‘품격’과 ‘럭셔리’가 아니라 그저 물비누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는 뜻이다. 주변에 물어보니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호텔에서 퇴실을 준비하며 어메니티를 주섬주섬 챙겨오지 않는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들은 브랜드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우리는 람보르기니 배지로 포장된 담배나 포르쉐 로고가 붙은 볼펜 같은 물건들이 주는 허망함을 충분히 맛봤다.

백화점에서 파는 본품과 어메니티로 제공되는 제품의 품질이 다른 것 같다는 불만도 어메니티의 존재감을 흔드는 요인이다. 집에서는 마트표 제품을 쓰고 호텔에서만 좋은 브랜드 제품을 접하는 사람은 느끼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고가 브랜드 샴푸를 섭렵했던 경험이 있는 이들은 어메니티 제품이 다운그레이드 된 제품이라는 강한 의혹을 지우지 못한다.

1가구 1샴푸 시대는 이미 끝났다. 샴푸와 비누, 로션 등의 소비 패턴이 달라진 것은 어메니티에 대한 기대감을 낮아진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샴푸와 로션은 기본이고 최근에는 치약도 취향 따라 따로 쓴다. ‘온가족의 아침을 책임지는’ 제품은 사양길이다. 제품력이 뛰어난 욕실용 제품을 만드는 암웨이가 최근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즘 사람들은 ‘좋다고 소문난 제품’보다는 ‘내 취향인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 취향이라는 것에는 본인의 피부 타입에 맞는 제품의 기본적인 기능부터 향기, 거품의 질감, 패키지의 디자인 등 모든 것이 들어간다.

호텔 어메니티에는 고체 비누가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괴리가 있다. 남자들이 세안용 클랜징 폼을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남자들 클렌징 제품 사용 증가는 BB크림이라는 괴물이 세상에 나온 이후 더욱 늘어났다. 손을 씻을 때도 마찬가지다. 액상형 손세정제는 신종플루 사태 이후 급속하게 욕실 한켠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지난 2014년 썼던 아래 기사는 이런 상황을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준다.

온라인 쇼핑채널인 11번가는 2012년까지 33.4% 증가하던 고체비누 매출이 지난 해 부터 올해 3월말까지는 -26.8%로 감소했다. 11번가 관계자에 따르면 “고체비누의 경우, 점차 판매율이 하락하고 있으며 일반 가정용 판매보다는 업소용 판매가 다수”라고 밝혔다. 오프라인도 상황은 비슷하다. 홈플러스는 2012년까지 2.8%성장세를 보이던 고체비누 매출이 지난해는 -4%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제조사들 역시 이러한 판매 부진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대책을 마련 중이다. 애경산업 비누의 생산방식을 2011년도 부터 OEM형태로 변경했다. 이 회사의 2013년 비누 판매 수량은 23만개 정도다. 애경산업은 현재 선물세트용 비누와 소비자의 니즈를 고려한 항균비누 2품목 등 총 3품목을 운영하고 있다. 애경 관계자는 “세안용 폼클렌징, 바디워시 등 비누를 대체하는 품목이 세분화 되어 출시됨에 따라 비누를 찾는 고객들이 점차 줄었다”고 밝혔다.

왜 호텔은 클랜징 폼을 주지 않을까? 그 동안 투숙했던 호텔 중 세안용 클랜징 제품을 제공하는 호텔은 지금은 사라진 W 서울(Bliss 제품)이 유일했다. 모텔(유식하게 말하면 일반숙박업)은 1회용품을 넣은 파우치를 1000원을 받고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에 반드시 들어가 있는 아이템은 여성용 클렌징 폼이다.

이번 칼럼을 준비하며 특급호텔에서 클랜징폼을 제공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니 “얼굴 피부는 트러블이 나기 쉬워서 컴플레인이 발생할 위험성이 높다”는 답변이 나왔다. 바디 로션은 제공하지만 스킨 토너나 페이셜 로션, 크림, 마스크 팩 등을 기본 어메니티 아이템으로 제공하지 않는 것 역시 비슷한 이유다. 너무 보수적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안전’이라는 부분에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 것은 럭셔리 호텔을 그 아래 세그먼트와 구분지어 주는 중요한 경쟁력이다.

글을 쓰며 ‘10년쯤 지난 미래에는 어떤 어메니티가 호텔 욕실에 자리잡고 있을까?’라는 상상도 해봤다. 일단 양극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더 좋은 것을 주거나 아예 안 주거나’다. 그리고 제공되는 형태도 조금씩 바뀔 것이다.

어메니티는 태생적으로 환경 이슈에 취약하다. 환경을 생각하면 어메니티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 물에 쉽게 분해되는 성분이 의무화 될 것이고 결국은 많은 국가에서 디스펜서를 사용하는 쪽으로 규제가 만들어질 확률도 높다. 지금 상황에서는 ‘위생상 우려’를 내세우는 투숙객들이 개별 포장된 어메니티를 선호한다는 현장 의견이 압도적이다. 알로프트는 디스펜서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호텔인데 아직까지 서비스 형태를 고수하는 것을 보면 심각한 컴플레인은 없다고 봐야한다.

럭셔리 세그먼트에서는 플라스틱이 아닌 도자기나 유리병, 크리스털 등으로 만들어진 용기에 어메니티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플라스틱이라는 소재는 결국 ‘싸구려’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캐미컬 포비아’가 확산되며 호텔이 제공하는 어메니티에 대한 불신이 커질 우려도 크다. ‘유명 브랜드=안정성’이라는 무언의 약속은 이미 깨졌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생리대 파동을 지켜봤다면 호텔업계는 욕실 어메니티 제품에 대한 안전성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요즘 소비자들은 영국 왕실에서 사용하는 브랜드 보다는 자연 친화적인 제품을 만드는 작은 회사 제품을 더 신뢰한다.

_ 전경우 스포츠월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