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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칼럼] 호텔과 모텔사이
김인진  |  lee2062x@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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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20  14: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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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삶을 피해 온 하룻밤 쉘터. 팽팽하게 곤두섰던 이성이 이완되고, 취기와 더불어 야릇한 해방감이 비로소 넘실거리는 뒷골목.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을 내걸어 곳곳을 선정적으로 밝히는 그것, 모텔(Motel). 본연의 쓰임새, ‘숙박’이라는 개념은 점점 퇴화되었고 우리 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다른 모양새로 변태해 왔다. 요즘 젊은 세대의 인식은 또 달라진 듯 보이지만, 좀 중늙은 세대에게 모텔은 인간 욕망의 배출구, 혹은 불륜의 온상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최근엔 여러 변수들이 맞물려 더욱 화려한 변태의 조짐이 엿보이고 있고, 이는 그동안 데면데면한 사이였던 호텔에도 적잖은 영향을 파생할 것으로 보인다.

1. 한국형 모텔
모텔은 본디 자동차(Motor)와 호텔(Hotel)의 합성어이다. 뜨거운 여름 한철, 가족과 함께 자동차로 긴 여행을 떠나는 중산층의 소박한 꿈을 겨냥해 주로 하이웨이 도로변에 생겨난 저렴한 숙박시설이었고, 19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처음 생겼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저렴한 숙박시설이었던 모텔은 대한민국으로 넘어와 전혀 다른 정체성을 띄게 된다.
한국에서 대중 숙박시설은 1세대 여인숙·여관, 2세대 장급 여관, 3세대 초기 모텔에 이어 최근 고급형 모텔로 빠르게 진화해왔다. ‘장급’이 대세였던 여관들이 마침내 모텔이란 이름으로 바꿔 달기 시작한 건 88올림픽 직전인 1987년 무렵이라고 한다. 호텔에 버금가는 장급 여관이란 걸 강조하기 위한 이름이었다는데, 역시 고상한 외래어의 파워가 작용한 때문일까, 아니면 대부분 그렇듯 일본의 유행을 답습한 것일까, 그마저도 아니면 이들의 초기 입지가 주로 근교로 빠지는 도로변이었던 탓이었을까. 이들의 ‘손님’은 본고장의 경우처럼 긴 자동차여행을 떠난 가족단위 여행객이 아니다. 젊은 세대를 위시해 성인식이 급하게 바뀌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모텔이 제공하는 주력 가치는 적절한 장소를 찾지 못해 은신했던 욕망이 남몰래 해소되는 공간일 뿐이다. 이들에게 ‘숙박’이란 본래의 개념은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이런 모텔들은 얼마나 될까? 한때 전국의 찻집보다 많다며 화제가 되기도 했고 ‘대한민국에 유별나게 많은 건 교회와 모텔이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는데, 어쨌거나 우리나라 숙박 시설을 통 털어 가장 많은 형태가 이 모텔이라고 한다. 2014년 기준 관광호텔이 서울 기준 215개인데 반해 여관과 모텔은 무려 2900여 개 소이며, 전국 단위로는 약 2만5000곳이 성업중이다.(출처: KOSIS)

2. 모텔은 놀러가는 곳?
하지만 그 모텔의 정체성은 또다른 가치를 향해 변태하고 있는 중이다. ‘야놀자’나 ‘여기어때’의 티비 광고를 본 적이 있는가? 5~60대 올드한 세대에겐 좀 민망할 수도 있지만 버젓이 공중파 황금 시간대에 모텔을 광고하고 있다. ‘모텔은 잠자는 곳이 아니라 놀러가는 곳’이라나? 예전과 달리 젊은 세대가 모텔에서 무엇을 하고 노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지만, 그 동안 특급 호텔들이 대중화를 향해 변화해 온 궤적을 되짚어보면 모텔의 이런 뜬금없는 주장에 대놓고 반기를 들기엔 좀 불안하다. 세상이 변하는 건 꽤 느닷없기도 하고, 오지랖 넓은 필자 역시 젊은 세대의 노는 양을 이해하지 못하는 중늙은 세대의 일원일 뿐이다.
그 기저엔 우리 사회의 성의식 변화와 달라진 소비행태, 그리고 이에 편승해 일부 선도 모텔들이 새롭게 포장해 낸 가치가 있다. 젊은 세대들은 모텔 출입을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숙제도 하고, 파티도 하고, 이해하기 쉽진 않지만 그냥 쉬러 오는 이들도 없지 않다고 한다. 아울러, 드나드는 이들을 마냥 불륜 커플로 예단해 곁눈질 하면 큰 코 다칠 수도 있다. 요즘은 불편한 환경을 피해 부부들도 꽤나 출입한다는 후문은 설득력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모텔 산업이 중흥기를 구가하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경기가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 욕망도 함께 잦아드는 것일까? 스스로의 처지가 만족스러웠다면 모텔들이 리스키한 변화를 모색할 이유도 없었을 터, 새로움을 추구하는 지금의 모습은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사투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
원래도 후미진 곳이라 어디에서도 이들의 업황을 눈대중 할 수 있는 자료를 찾을 순 없었는데, 여기저기서 귀동냥한 바로는 부실한 대형 호텔들의 사정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대출은 증가하고 있으며 모텔 운영을 통해 이자만 겨우 내고 있는 곳도 많다고 한다.

   
 

3. 모텔의 새로운 가능성
호텔과 모텔은 원래부터 대면대면한 사이였다. 모텔들이 더러는 호텔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경우도 많지만 밥그릇도 달랐고 추구하는 바도 달랐으며 법적 신분도 물론 같지 않다.
하지만 불륜과 로맨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것처럼 서로의 영역을 넌지시 뺏고 빼앗기며 호텔과 모텔 사이에 쳐둔 심리적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호텔이 모텔 성공의 조건 ‘필승의 3회전’을 흉내내며 대실 영업(Day Use)을 대놓고 구색에 추가하고 있기도 하고, 모텔은 덩치만 크고 움직임 둔한 호텔을 비아냥거리며 최신 설비와 새로운 경험을 갖춰 젊은 세대의 감성을 겨냥한다.
최근엔 싼곳을 찾아 야밤 셔틀을 마다치 않는 중국 단체관광객들을 모텔의 메뉴에 새로 추가해 놓았다. 이들은 원래 모텔이 엄두내던 타깃이 아니다. 이들은 숙박업 운영에 필요한 기본적인 시스템들과 스탠다드를 이식하며 빠르게 프랜차이징화되고 있다. 이들의 호텔 ‘나와바리’ 상륙 작전은 중국 관광객들을 야금야금 집어 삼킬 때 이미 시작됐다. 호텔에겐 미운털이 박힐지 몰라도, 저가 숙박시설에 목말라 사드 사태 전까지 전방향 공급 정책을 밀어붙이던 정부에겐 마치 기대하지도 않았던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었다랄까?
행정 당국에서 전국 요지의 모텔들을 대상으로 관광진흥기금을 지원하는 등 관광호텔로의 전환을 시도했던 듯 보이지만 모텔들의 반응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던 모양이다. 시설 투자도 만만치 않고,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여러 규정들에 구속되어야 하는데, 이를 벌충할 만한 미끼는 크게 구미 당기지 않았을 터이다.
그렇지만 보기에 마냥 불편한, 성적으로 발라당 개방적인 젊은 세대와 불륜 혹은 로맨스 늙은 고객에게 밥줄을 통째로 걸 순 없는 일이다. 국내 여행 문화도 몰라보게 바뀌고 있을 뿐더러, 저가 숙박시설을 찾는 외국관광객들은 앞으로도 시장에 넘쳐날 것으로 보인다.
마음을 바꾸어 먹고 초기 투자를 감당할 수 있다면 블루오션이 바로 목전에 있다. 공무원들에 의해 만들어진 지금까지의 부실한 성과를 놓고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면 곤란하다. 모텔의 가능성은 결코 작지 않으며, 정부 입장에서도 저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값비싼 새 건물들을 부추겨야 할 필요가 없으니 행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불륜이 잉태한 돌연변이 숙박시설이 한국 관광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때가 바야흐로 열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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