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리얼(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이 칼럼 이름이다)’의 주제를 정하는 것은 나에게 매달 돌아오는 어려운 고민 중 하나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느낌이 왔다. 여름 내내 호텔리어들과 미팅에서 오갔던 이야기는 거의 모두 기승전‘김영란’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가장 핫한 주제, 단연 김영란법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강 건너 불구경’하며 ‘감 놔라 배 놔라’하듯 글을 썼다. 나는 호텔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글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글쓴이가 당사자가 됐다. 나도 모르게 ‘언론인’에서 ‘기레기’가 되더니 다시 ‘공직자’가 됐기 때문이다.(다음에는 ‘성직자’가 됐으면 좋겠다. 세금이라도 안내게)
‘기레기’들은 ‘공직자’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소비심리 위축 등 여러 이유를 들어 헌법소원까지 냈지만 결국 ‘합헌’이라는 기사를 써야 했다. 그 뒤로 언론은 ‘김영란’이라는 이름에 대해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나가 시방 살을 날릴 것이여~” 영화 ‘곡성’에 나왔던 대사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와 사립학교 교원, 언론인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살을 맞은 대상은 호텔업계다. 식사와 선물의 가격을 3만 원, 5만 원으로 제한하는 규정은 ‘법카 경제’로 돌아가는 호텔 식음업장을 향해 돌직구처럼 날아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프레스 대상 행사가 열리는 서울 시내 호텔 연회 담당자들 역시 패닉에 빠졌다.(당장 돌파구를 마련하고 싶으면 ‘김영란법 설명회’같은 행사를 유치해 보시길)
수많은 호텔리어들이 “그런 법이 어디 있어!”라고 믿지 않으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있지, 김영란법!”이라고 답하며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가이드라인에 대해 찬찬히 설명을 해줬다. 다들 반응은 비슷했다. “뭐 어떻게 되겠죠.”, “그때 가서 생각할래요." 막연한 공포에 대한 가장 쉬운 대처는 ‘외면’이었다.

2016년 9월은 여지없이 찾아왔다. 방학숙제를 미뤘던 초등학생처럼 다들 뭔가 대책을 내놓으려 허둥대지만 현실은 언제나 ‘노답’이다. 다들 그저 김영란법이 거대한 쓰나미가 아닌 잔잔한 파도 정도로 그치기를 바랄 뿐이다.
일단 급한 불이 발등에 떨어진 것은 홍보담당자다. 매일 상대하던 카운터 파트너가 갑자기 ‘공직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은 올해 큰 결심을 했다.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으며 로비를 뜯어고쳤다. 여러 사람이 매달려 세상에 없던 혁신적인 콘셉트의 식음업장을 만들었다. 사활을 걸고 홍보를 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은 하필 김영란법 시행 이후다. 이 호텔 홍보부는 ‘패닉’에 빠졌다. 새로운 레스토랑 홍보를 위해 프레스 행사를 해야 하는데 아무도 그에 대해 명확한 지침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결심이다.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는먼저 치고 나가는 사람이 기준을 만들게 되어있다. 결국 행사는 오피셜하게 진행하기로 하고 1인당 메뉴를 제공하지 않고 백화점처럼 ‘시식 코너’를 이용하는 것이 잠정적 결론이 됐다.

호텔, 라이프스타일, 다이닝 등을 담당하는 기자들은 새로운 메뉴를 테이스팅 하는 것이 본연의 업무지만 김영란법의 해석은 제공되는 음식물을 그저 ‘식사’내지는 ‘선물’로 해석한다. (음식을 먹으면 ‘식사’로 해석되어 한도가 3만 원인데 테이크아웃을 하면 ‘선물’이 되어 5만 원까지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봐야 하는 문서는 국민권익위원회가 김영란법 시행 직전 내놓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풀네임이다)에 대한 직종별 매뉴얼’ 언론사 대상 버전이 거의 유일하다. 표지 포함 무려 205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문서다.
이 문서 75페이지에 보면 Q&A가 정리되어 있는데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

Q. 공연 담당 기자가 기획사의 티켓을 지원받아 고가의 공연을 취재 목적으로 관람하는 경우 청탁금지법 위반인가?

A. 청탁금지법상 수수금지 금품 등의 예외사유인 원활한 직무수행 목적으로 제공되는 선물의 가액 기준은 5만 원이다. 따라서 5만 원을 초과하는 공연 티켓을 지원 받은 경우는 가액기준 범위를 벗어나 제제 대상이다.

이 매뉴얼을 수 차례 정독을 해본 결과 기자에게 제공되는 모든 것 중 입에 들어가는 것은 ‘음식물’의 범주에 들어가고 그 이외의 재화나 서비스는 ‘선물’로 해석하는 느낌이다. 예외로 인정을 받으려면 ‘공식행사’가 되어야 하는데, 34페이지 ‘공식적인 행사 인정 여부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홍보의 목적으로 일부 특정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기자간담회를 실시하는 경우(불인정). 특정된 소수의 언론사만 참석하는 등 합리적 이유 없이 참석대상을 한정한 점. 단순 홍보를 위한 경우로서 기관 업무 및 사업의 시행과 직접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공식행사로 보기 어려움

이게 우리나라 말인데 참 어렵다. 특정한 소수의 언론사만 참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면 어떻게 하나? (레스토랑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매체는 한정적이다.) ‘단순 홍보’라는 단어도 어렵다. 사전적으로 반대어는 ‘복잡 홍보’가 될듯하다. 일간지, 월간지 등을 상대로 하는 ‘단순 홍보’는 ‘사업의 시행’ 및 그 성패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나. (법이라는 게 이렇게 어려워서 사람들이 로스쿨이라는 비싼 학교에 가는 것 같다)

여름 내내 호텔은 물론 국내 모든 기업들이 이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결국 회사 차원의 공식 지침은 “일단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재경을 담당하는 부서는 접대비가 줄어들어 좋아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홍보 담당자는 다르다. 당장 아무것도 안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법의 적용 기준이 모호하고 회사의 방침이 소극적이라면 결국 남은 것은 ‘개인의 결심’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나는 질문을 바꿨다. “너희는 어떻게 한데?”에서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매뉴얼을 살펴본 소감은 ‘공직자’에서 ‘언론인’으로 주어만 바꿔 놓은 느낌이 강하다. ‘외부강의 등 사례금 수수 제한’ 개요를 설명한 139페이지를 보면 ‘민관유착’(언론인은 '관'이 아니다)이라는 표현과 함께 ‘언론사 임직원들의 외부강의 등이 국민과의 소통, 정부정책의 홍보, 전문 지식 활용을 통한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라는 해석이 나온다.
읽다 보면 참 여러가지로 알쏭달쏭한 매뉴얼이다. 호텔아비아 기자도 ‘언론인’에 속하는데 그는 ‘정부정책의 홍보’, ‘국민과의 소통’을 해야 하는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일까? 85페이지에 보면 이 ‘언론’을 ‘공적인 관심사에 대하여 공익을 대변하며 취재/보도/논평 등의 방법으로 민주적 여론형성에 이바지’하는 존재로 해석한다. 호텔아비아 최종인 기자는 진정 애국자다. 장교로 복무하며 국가에 봉사를 마친 그는 ‘보도를 통해 국민의 의사소통과 여론 형성을 위한 통로’역할까지 묵묵히 수행하는 중이다.

매뉴얼을 ‘온 우주가 감동할 때 까지’ 읽다 보면 이런 내용도 나온다. 이건 아주 쪼끔은 재미있다.

Q. 미혼의 언론사 임직원인 A가 언론사 임직원이 아닌 미혼의 여성 B와 교제하여 직무와 관련 없이 1회 100만 원, 회계연도 300만 원을 초과하여 선물을 받을 수 있는지?

A. 원칙적으로 1회 100만 원, 회계연도 3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 직무관련여부와 상관없이 형사처벌 대상에 해당하나, A와 B는 연인관계에 있으므로 수수의 동기, 목적, 당사자의 관계, 수수한 금품의 가액, 청탁과 결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 등에 해당되어 수수 가능

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연인관계’는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연인 관계임을 밝히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거의 ‘절대적 가치’다. 역시 사랑은 위대하다)
_ 전경우 스포츠월드 기자

이 칼럼은 개인적인 의견의 피력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정신적 자유권으로서 제19조 ‘양심의 자유’(사상의 자유를 포함), 제21조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 제22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글에 대해 다른 법적인 잣대를 들이댄다면 ‘이민’ 혹은 ‘망명’을 심각하게 고민해 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에 가고 싶다.

1791년 등장한 미국의 수정헌법 1조는 ‘미합중국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종교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또 의회는 언론·출판의 자유 또는 국민들이 평화적으로 집회할 수 있는 권리와 고충 처리를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다른 기본권에 대한 ‘우월적 지위(preferred position)’를 갖는다.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를 보다가 ‘수정헌법 1조’의 존재를 알게 됐다.)

미국 수정헌법 1조를 영어로 쓰면 아래와 같다.

Amendment I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or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or the right of the people peaceably to assemble, and to petition the government for a redress of grieva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