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대한 후회가 없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이는 참으로 멋있다. 당당함이 자연스레 드러나고 결심도 항상 신속하다. 그리고 온힘을 다해 주어진 일에 매진한다. 때론 좌절도 있지만, 늘 결말은 행복하다. 듬직한 체구의 이재영 부총주방장을 만났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자기 일에서 만큼은 거침없이 전진할 것 같은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 포시즌스 호텔 서울 이재영 부총주방장

“처음부터 요리를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덩치도 있고 해서 10대 때 방황을 좀 했었거든요. 대학보다는 군대를 먼저 선택했고, 걷는 게 싫어서 즉흥적으로 해군을 선택했습니다. 배를 타면 재밌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제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운전면허증이 있었던 이재영 부총주방장은 해군에서도 운전병을 하고 싶었다. 더운 여름날. 자리에서 잠시 졸았던 탓에 선착순 50명 안에 들지 못했다. 앞에 3명 정도가 더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터덜터덜 자리로 돌아가려는 찰나, 조리병을 뽑는다는 안내가 나왔다. 그리고 주저없이 그 길을 선택했다.

“무조건 지원한다고 되는 건 아니었지만, 운 좋게 통과가 되었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 간을 잘 맞추고 맛을 잘 봤습니다. 1~2년 지나다보니 부대 안에서 평가도 좋고 맛있다는 말을 자주 들으니 점점 자신감이 생겼죠. 군대에서 조리자격증을 세 개나 땄습니다.”

이재영 부총주방장은 한 번 바다에 나가면 두 달 정도 낙도를 돌아다니는 일을 했다. 섬에 사는 외로운 노인들의 위문공연도 하고 물자도 조달해주는 배였다. 그 배 안의 식구들을 먹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리가 즐거웠다. 그래서 제대 후 곧 호텔조리학과에 진학했다. 군 시절 준비해둔 자격증이 큰 힘이 됐다.

“호텔조리학과에 들어가 졸업만 하면 자연스레 호텔에 취업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순진한 생각이었죠. 졸업하는 학생 60명 중 겨우 2명 정도가 취업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호텔의 조리사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무조건, 서울의 멋진 호텔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었죠.”

리츠칼튼 서울에서 실습을 한 이재영 부총주방장은 당당히 호텔 취업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가 남들보다 빼어나게 요리를 잘 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빠르게, 그리고 성실하게 일하는 그의 태도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른 학생들이 9시간 근무할 때 저는 앞뒤로 한두 시간씩 더, 총 12시간 정도를 근무했습니다. 당시에 국내 유명 조리학과, 해외 유학파 출신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들 자신의 요리를 하고 싶어 했어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만큼 배운 게 많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조리사보다 절실히 취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취직이 꿈인 이재영 부총주방장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식재료를 창고에 정리하고 이를 꼼꼼히 관리했다. 한 달 정도 지나, 선배들이 급하게 식재료를 찾을 때 그 어떤 학생보다 먼저 가져다줄 수 있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자 선배들은 그에게 부탁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해군시절 배에서의 생활이 도움이 많이 되었죠. 배에서는 식재료 저장과 위생관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루에 200인분을 만들어야 하는데, 딱 호텔규모의 냉장고를 가지고 있지요. 또 드라이 식자재 창고도 구비되어 있고요. 그래서인지 호텔 주방이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창고 선입선출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이미 군에서 저는 단련이 되어있던 상태였던 거죠.”

리츠칼튼은 그 이름만 들어도 많은 호텔리어들이 경외심을 품는 호텔이었다. 그런 브랜드의 호텔에서 정식으로 호텔 주방에 들어선 이재영 부총주방장은 다양한 파트를 오가며 일에 심취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일이 안정되고 익숙해지자 다시금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망이 피어났다. 모든 호텔업계의 이목이 집중된 2005년, 파크 하얏트 서울이 그의 목표였다.

“정말 많은 호텔리어들이 파크 하얏트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국내에 새롭게 들어오는 럭셔리 브랜드였으니까요. 파크 하얏트 서울에서 만난 스테파노 디 살보 총주방장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하루하루가 정말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지만 그 만큼 쑥쑥 성장하는 느낌을 스스로 깨달았으니까요. 세계에서 가장 깐깐한 셰프인 거 같았습니다. 그 분 옆에서 8년 정도 일하다보니 어느새 저도 훌쩍 자라 있었습니다.”

파크 하얏트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기존의 다른 호텔들은 외국인 총주방장이 현지 과장급에게 많은 터치가 없었다. 혼자서만 주방을 이끌 수는 없는 것이고, 로컬 음식에 대한 예우 같은 게 있었다. 하지만 파크 하얏트는 총주방장이 직접 모든 일을 관리감독하고 지시를 내렸다. 스탠더드를 지켜 모든 디시가 똑같이 나갔다. 화이트 트러플, 신선한 블랙 트러플 등 최고급 식재료를 처음 만져보기도 했다. 조리기법도 새로운 것이 많았다. 이재영 부총주방장은 다시금 열정이 살아나는 걸 느꼈다.

“아침 6시에 나가 저녁 10시에 퇴근하는 날이 계속 됐습니다. 그렇게 5년을 살았죠. 근데 재밌었습니다. 새로운 걸 배우기 때문에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발전이 눈에 보이니 진급도 빨랐습니다. 요리에 미쳐 살았던 시간이었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저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또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브랜드를 옮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예 도시를 떠나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새로이 오픈하는 파크 하얏트 부산에 스승같은 스테파노 디 살보 총주방장과 함께 내려갔다. 고향이 경주였던 탓에 좀 더 친근한 지역이지만 서울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같은 식재료로 같은 요리를 내어도 서울과 부산의 온도차는 확연히 있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도 깨달음이 있었던 거지요. 제가 부산에 내려간다 했을 때 제가 모르는 분들에게도 전화를 받을 정도로 많은 관심이 집중된 호텔이었습니다. 최고를 선보인다고 했는데, 지역에 맞는 스타일이 조금 아니었던 거죠.”

스테파노 디 살보 총주방장이 파크 하얏트를 떠나고서도 9개월 정도를 더 그는 파크 하얏트 부산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우연찮은 기회로 남들보다 빨리 오픈중인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총주방장으로 누가 선임이 되었는지 알게 됐다. 이재영 부총주방장은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랄프 도메이어 헤드 셰프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랄프 도메이어가 전 직장을 관둔 바로 다음날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정말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요. 한국에 들어와 인터뷰를 볼 때까지 ‘이 친구가 과연 누굴까?’ 궁금했다고 합니다. 이메일 보낼 당시만 해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워낙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았을 것이고 해외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진심을 담아 글을 썼습니다. 평범한 이력서가 아니라 내가 포시즌스 호텔 서울에 가게 되면 해줄 수 있는 일과 장점들을 상세하게 적어 보냈죠. 처음 보내고 답이 없어, 한 달 뒤 또 한 번 보냈습니다. 그러자 답이 왔죠. ‘한국에 들어간다. 그 때 보자!’ 라고요.”

파크 하얏트 서울에 이어 정확히 10년만의 일이다. 그 시간 동안 이재영 부총주방장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리츠칼튼, 파크 하얏트, 이제는 포시즌스에서 럭셔리 호텔 브랜드의 새로운 시스템에 매료되어 하루하루를 보낸다. 다른 브랜드에 비해 역사와 전통이 짧을 수 있지만, 포시즌스가 세계 최고의 럭셔리 호텔로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을 이재영 부총주방장은 체계적인 시스템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최고급 시계처럼 모든 직원이 하나의 나사가 되어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총지배인부터 직원까지 포시즌스라는 자부심으로 움직입니다. 가장 자기다운 위치에서 자기답게 일을 하는 것이죠. 중식당은 정통 광둥식 요리를, 일식당은 일식의 참맛을 현지처럼 선보이고 있습니다.”

▲ - Abalone karaake rice pot- Roasted black chicken roll, honey glazed sweet pumpkin, ginseng essence- Steamed sea eel, scallop mousse, sea weed, clam jus

이재영 부총주방장이 이곳에 오기 위해 썼던 이메일에서 밝혔듯이, 준비한 인생의 요리는 포시즌스 호텔 서울에 그가 가져올 수 있는 최고의 장점, 바로 한국의 맛이었다. 국내 제철 재료와 여름철이면 지치는 고객을 위해 보양식으로 준비한 정성의 한 접시는 그의 성격처럼 올곧고 강인했다.

“저는 항상 결정을 빨리 하는 편이었습니다. 남들보다 두세 걸음은 더 앞서가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잠시 뒤를 돌아보면 짜릿합니다. 리츠칼튼, 파크하얏트, 포시즌스…… 최고의 호텔 브랜드에서 근무하며 만들어낸 이력이 자랑스러우니까요. 그래서, 저는 한 번 더 도전하고자 합니다. 세계의 럭셔리 호텔에 진출해 한국인 총주방장으로서 말이죠.”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op Chef Summit for Young’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op Chef Summit for Young’은 28년 연속 가축 질병 제로, 농축산 분야 세계 최초로 유엔이 인증한 지구 온난화 방지 기후협약 실천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한 고품질의 프리미엄 돼지고기를 세계 45개국 특급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에 공급하고 있는 칠레 최대의 농축산 기업 ‘아그로수퍼’와 호텔 요리 트렌드의 공유는 물론 한국 식문화와 조리 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내 특급호텔 현직 총주방장 모임 ‘셰프테이블’이 후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