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들은 많지만,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감정이 변해가듯 사람도 꾸준히 변해야만 한다는 신종철 총주방장의 말처럼 그는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최근 한 CF의 문구처럼 끊임없이 변화해왔던 신종철 총주방장의 인생과 요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 신종철 총주방장

지금도, 예전도 제주도는 관광의 상징과도 같은 우리나라 대표 섬이다. 조금만 과거로 가면 신혼부부의 단골 신혼여행지로 각광받았던 시절이 있었고, 2000년대 들어선 수학여행 등 좀 더 제주를 갈 수 있는 여행자의 폭이 넓어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아, 중국인을 비롯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제주를 찾는다. 그래서일까? 제주에서 자란 사람들은 자연스레 관광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도 한다.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두 번째로 호텔이 많은 지역이 제주 아닐까요? 1992년도에 누나가 호텔 프런트데스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누나를 만나러 호텔을 방문했는데, 그때 파스타를 만드는 조리사를 보고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런 저의 눈빛을 보았는지 누나는 호텔에서 일해보는 걸 권했고, 저의 진로가 정해지게 됐습니다.”

그렇게 선택한 호텔의 길이었다. 스물두 살의 나이에 경주 호텔학교에 입학하고 이후 제주로 돌아와 호텔에서 근무하기 시작, 1994년 제주 신라호텔에 입사하게 된다. 당연히 주방은 엄격했다. 허드렛일부터 시작하게 됐지만 신종철 총주방장은 한 번도 이 일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식재료를 나르고, 설거지를 하고, 칼질을 하고……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흘렀고 자연스레 사원, 과장, 부장 수순마다 차곡차곡 자리에 올랐다.

“식음분야에서 직급이 높은 만큼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이라는 세간의 오해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일정 부분은 경험이나 지식의 차이로 그러할 수도 있지만, 무조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요. 직급이 올라갈수록 새로운 일들을 배워야 했습니다. 우선 과장은 자신의 파트,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의 요리를 기본으로 하면서 인력과 코스트 또한 관리를 해야 하죠. 차장은 상부에 리포트를 제출하고 호텔 운영에 전반적인 회의에 참가하는 등 더 넓은 지식과 업무 수행능력이 요구됩니다.”

신종철 총주방장은 요리 기술, 식재료에 대한 이해 등 조리사로서 갖춰야할 지식과 경험 뿐만 아니라 자신의 무기가 될 또 하나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2005년 우연히 알게 된 혁신 툴 ‘6시그마’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공부를 시작했다. 남들은 조리와 관련 없는 일에 왜 노력을 기울이냐고 말했다. 하지만, 신종철 총주방장은 묵묵히 호텔 주방에 일하며 승진해나갔듯이 그린벨트, 블랙벨트, 그리고 6시그마 최종 단계인 마스터블랙벨트까지 도달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하루살이 인생입니다. 하루살이가 비오는 날 태어나면 그 하루살이의 세계는 언제나 비가 오는 곳이지요. 비가 오는 곳에 살더라도 맑은 날에 대한 지식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리사는 기본적으로 다른 걸 보고 무언가를 개발하려는 본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데 도움이 되지요. 원서를 번역해서 요리를 만들어보고 국내 식재료 현실에 맞춰 도전을 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자신만의 기술이 생겨납니다.”

신종철 총주방장은 요리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서 그 무기 하나만으로 전쟁을 이길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호텔 주방에는 모두가 무기 하나는 가지고 있다. 그 외의 무기가 있을 때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칼솜씨가 뛰어나거나, 식재료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는 등 요리와 관련된 무기에서부터 컴퓨터를 유독 잘 다루거나, 외국어에 능숙하거나 하는 요리 외적인 무기도 반드시 필요하다. 신종철 총주방장에게 무기는 다름 아닌, 6시그마가 되었다. 6시그마는 기본적인 품질과 관련된 기업에서 흔히 사용하는 문제해결기법인데 조리사나 주방장 최초로 호텔의 전반적인 품질관리를 담당하게 됐다. 이는 위생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며 큰 업적이 되었다. 그는 안전한 식자재와 식품, 요리 시스템을 갖춘 해썹(HACCP)을 도입해 호텔에 정착시켰다.

“나의 장점은 무엇이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면 혁신적인 마인드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지인의 도움으로 시작한 6시그마에 도전하기까지 저의 이런 태도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니까요. 지금도 식재료를 찾으러 전국을 여행하고 외국 원서를 틈틈이 찾아 읽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신종철 총주방장은 이와 같은 능력과 열정을 바탕으로 국내 호텔 오픈 5곳의 주방설계, 조리매뉴얼(SOP)을 완성했다. 그의 노하우는 최근 몇 년간 큰 이슈가된 비즈니스호텔에도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저는 이제 다양한 요리의 뷔페 시대는 끝났다고 확신합니다. 예전에는 다양한 음식이 쭉 진열된 뷔페를 선호하고 이 음식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고객이 많았다면 이제는 놓인 요리 하나하나가 일품요리(A La Carte)같은 퀄리티의 뷔페가 대세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품요리와 같은 퀄리티의 음식이 뷔페 레스토랑에 준비되는 걸 추구합니다. 좋은 식자재라는 말은 없습니다. 비싸다면 무조건 좋은 식자재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얼마나 합리적인 가격에 퀄리티가 높은 식자재를 구하냐가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식품 산지를 중요시하고 공정상 일어나는 로스율을 최소화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신종철 총주방장이 만든 뷔페 레스토랑은 각각의 프로퍼티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평일 런치에는 합리적인 가격에 고품질의 음식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그 레스토랑에 관련된 좋은 기억을 그에게 전하자 그는 잠시 멋쩍어하며 말했다.

“이제는 국내 제일의 글로벌 체인인 JW 메리어트 서울의 총주방장으로 부임한지 1년이 지났습니다. 이곳에서는 ‘더 훌륭한’이 아닌, ‘최고’의 맛을 선보이고 있고, 선보이고자 노력하니 앞으로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2015년 5월 글로벌 체인 최초의 한국인 총주방장이 된 신종철 총주방장은 JW 메리어트 서울에서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늘 새로운 걸 추구하는 고객의 입장에서 조금 오래되어 보이는 호텔의 이미지를 어떻게 새롭게 보이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호텔의 음식은 커피처럼 쉽게 바뀔 수 있습니다. 원두를 바꾸거나 추출법을 바꾸거나 하면 커피는 금방 바뀌지요. 하지만 커피잔을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는 늘 새로워지려는 노력을 하는데, 하드웨어만 바라보면 좀 아쉬운 감이 없지 않죠. 2017년 이후 리노베이션을 거치면 저의 혁신마인드를 통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변화를 추구해서 국내 최고의 호텔 레스토랑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 신종철 총주방장의 喜怒哀樂을 담은 요리

신종철 총주방장은 인생을 담은 요리를 선보여 달라는 부탁에 희로애락을 담은 요리를 준비해주었다. 먼저 희(喜), 기쁨은 다금바리찜과 로브스터 비스크다.

“제주에서 근무하던 시절, 한미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비록 막내였지만, 처음으로 요리를 국빈에게 대접하기 위해 많은 시간 준비를 했었죠. 그 장시간의 노력 끝에 이 요리가 나왔고 많은 칭찬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요리사로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로(怒), 화가 났던 기억은 언제일까? 그는 요리를 하며 스스로에게 가장 화가 많이 났던 일을 떠올렸다. 봉골레 파스타. 조개를 해감해 볶아 와인에 졸여 파스타를 넣는 단순한 요리 때문에 고생한 과거가 그에게 있었다.

“요리를 하면서 손님에게 컴플레인을 받은 기억 중 명백한 저의 실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봉골레 파스타입니다. 제주 모시조개는 검은색 종달리 모시조개인데 그 색이 차돌과 비슷했죠. 한 번에 많은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다보니 조개 입이 다 벌어지지 않은 채로 나간 게 몇 개 있는데, 그중에 실제 돌이 포함된 접시가 하나 있었습니다. 요리사로서 하지 말아야할 실수였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지요. 그래서인지, 봉골레 파스타는 잘 먹지도 않습니다.”

애(哀), 요리사의 슬픔은 무엇일까? 신종철 총주방장은 어머니의 김치찌개를 떠올렸다. 제주에서 유년을 보낸 그는 다양한 해산물과 돼지고기 등 여러 식재료를 경험할 수 있었지만, 유독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김치, 그리고 그 김치로 끓여낸 김치찌개를 먹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한다.

“어려웠던 시절, 즐겨먹던 어머니의 김치찌개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애틋해집니다. 어려울 때 항상 같이 해줬던 어머니가 만드신 김치는 언제 제주를 내려가도 늘 그대로의 맛이니까요. 안에다 돼지고기, 꽁치, 고등어 등 들어가는 재료는 다르지만 왜 한결같은 맛이 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락(樂), 즐거움은 무엇일까? 정말 자신의 요리를 즐겼던 단골 고객의 한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대접한 일이다. 몽골리안 바비큐라 불리는 요리, 지금은 쌀국수 볶음이라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은 요리지만 이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집에서 종종 선보이는 그만의 즐거운 레시피다.

“몽골리안 바비큐는 보통 소고기나 양고기를 활용하지만 제주에서는 해산물이 풍부해 해산물을 가지고 조리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 이민을 가시는 고객님의 취향대로 여기에 쌀국수를 더했지요. 한국을 떠나기 전 꼭 저의 요리를 먹고 가시겠다는 고객님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떠나시기 전 받은 와인선물을 주방식구들과 함께 하면서 요리사로서의 자부심과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신종철 총주방장의 희로애락이 담긴 요리를 맛보고 이어 그의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생각하는 목표와 총주방장을 꿈꾸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은 그의 요리만큼이나 정갈하고 깊이가 있었다.

“쉰이 넘지 않은 나이에 철학을 말하긴 어렵지만, 요리를 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멈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하려고 해야합니다. 본능적으로 생각하는 걸 잊지 말아야 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혁신적인 사람과 아닌 사람 차이가 큽니다. 시작은 같아보이지만, 그 후의 차이가 크지요. 저 역시 멈추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글로벌 체인이 인수합병되고 한국의 호텔 산업 저변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식음 사업 영역에서 혁신을 거듭해 총지배인 또는 식음 총괄 담당자 등 총주방장 그 위를 꿈꾸려 합니다.”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op Chef Summit for Young’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op Chef Summit for Young’은 28년 연속 가축 질병 제로, 농축산 분야 세계 최초로 유엔이 인증한 지구 온난화 방지 기후협약 실천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한 고품질의 프리미엄 돼지고기를 세계 45개국 특급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에 공급하고 있는 칠레 최대의 농축산 기업 ‘아그로수퍼’와 호텔 요리 트렌드의 공유는 물론 한국 식문화와 조리 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내 특급호텔 현직 총주방장 모임 ‘셰프테이블’이 후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