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장을 보러 마트에 들렀다. 최근 무척 바빠진 탓에 요리를 자주 해먹지는 않았다. 기본적인 채소들도 이미 다 먹었거나 썩어 버려졌다. 집밥에는 여러 가지 채소가 반드시 기본으로 들어가야 한다. 대파도 그 중 하나. 대파를 사러 채소코너를 기웃거렸다. 팔 하나 길이의 대파 예닐곱 개가 뿌리에 흙을 묻힌 채 한 단으로 묶여 있었다. 가격은 2990원. 둘러보니 팩에 포장이 된 대파가 눈에 띄었다. 깨끗하게 씻긴 채 손바닥만하게 잘린 대파 하나 정도 분량이었다. 가격은 1990원. 1인 가정이 늘면서 마트에는 간편하게 정돈된 신선제품들이 많아졌다. 예전이었으면 전혀 고민할 문제가 아니지만, 앞서 말한 대로 바빠지고 집밥을 잘 해먹지 않게 된 탓에 나는 한 동안 망설였다.

망설임의 이유는 간단하다. 대파 한 단이 2990원인데, 깨끗이 손질된 대파 하나가 1990원이라는 것. 개당 가격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비교인데, 이를 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아직도 서비스의 가치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말이다.

내가 하기 싫은 건 남도 하기 싫은 게 당연지사. 파를 씻고 뿌리를 잘라내고 먹기 좋게 칼로 다듬는 작업은 귀찮고도 수고스럽다. 대파를 키우는 것에도 농부의 노동력이 들어갔지만 이를 패키징 하는 과정에도 분명, 누군가의 노력이 들어간 것이라는 걸 쉽게 간과한다.

가끔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요즘은 호텔보다 모텔이 더 나을 때가 있어.“ 이는 많은 이미지 변화와 시설 개선을 통해 얻은 모텔 업계의 성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히 가성비, 가격대비 성능비를 따진 잘 알지 못한 표현일 수도 있다. 새로 지어진 4성급 호텔과 조금 낡은 듯한 5성급 호텔을 다녀와서 4성급 호텔이 훨씬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4성급 호텔이 실제로 취향에 맞을 수도 있지만, 5성급 호텔의 가치는 시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신경을 쓰고 응대를 하는지, 또한 얼마나 서비스에 적합한 교육이 되고 경험이 있는지에 따라 가치는 달라진다. 낡은 5성급 호텔에서 지긋한 연세의 지배인에게 따뜻한 환대를 받은 기억이, 새로 지어진 4성급 호텔 로비에서 “무슨 일로 오셨나요?”란 질문을 받을 때보다 훨씬 가치있는 경험이 된다. 단순히 금액적인 측면에서 모텔이 호텔보다 낫거나 하는 식의 판단을 하는 것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대파 앞에서 고민을 했듯이.

원두의 차이와 에스프레소의 맛을 즐기는 이에게 “에이, 그래도 난 자판기 커피가 좋더라.”라고 말하는 건 무례한 일이다. 개인의 기호일 수는 있어도, 무형의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 경제관념이 부족하거나 허세가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미덕으로 치는 건 이미 고루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내가 1990원 짜리 잘 손질된 대파 하나를 골랐다고 해서, 나는 죄책감을 느끼거나 남부끄럽게 생각할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누군가 정성스레 씻고 다듬어준 파를 가지고 내 노동력을 더해 맛좋은 요리를 만들어 먹으면 그만이다.